‘불신의 씨앗 싹튼다’…불편한 동거 언제까지?

▲ 넥슨 김정주 대표와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라이벌(rival). 라이벌이란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맞수’를 뜻한다. 정치, 스포츠, 경제, 문화, 국가 등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활동하는 모든 분야에 라이벌 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대결들이 존재한다. 경제활동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기업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활발한 경제활동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마다 라이벌이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업종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의 라이벌 열전을 기획했으며 그 아홉 번째로 게임업계 라이벌이자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는 ‘넥슨 VS 엔씨소프트’의 맞수 열전을 살펴봤다.


‘스타열풍’수혜로 게임업계 양대산맥 자리매김
엔씨 지분 매입으로 인수에 필요한 실탄 지원


지난달 14일 넥슨은 계열사 넥슨코리아를 통해 엔씨소프트 주식 8만 8806주(0.38%)를 장내매수 했다고 공시했다. 이어 하루 뒤인 15일에는 엔씨소프트 홈페이지에 이에 대한 보도자료가 올라오면서 국내 게임업계가 술렁였다.


엔씨소프트는 보도자료에서 “지분 매입에 대해 사전 논의가 전혀 없었던 만큼 단순 투자 목적이라는 공시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는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사전에 논의가 전혀 없었던 점을 들어 불쾌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넥슨이 엔씨소프트를 상대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서기 위해 엔씨소프트와 사전 논의 없이 지분을 매입한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바람의 나라’ 성공기


지난 1990년대 국내 게임시장은 일본과 미국 게임업체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국내 게임시장에서 국내 게임업체를 찾아보기란 그야말로 사막에서 우물을 찾는 것과 같았다.


1990년대를 풍미한 ‘스트리트 파이터’나 ‘슈퍼 마리오’, ‘테트리스’, ‘삼국지’시리즈, ‘프린세스 메이커’, ‘파이널 판타지’, ‘심시티’,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등의 게임은 일본이나 미국 게임업체들이 개발한 작품들이었다.


이처럼 게임개발 불모지였던 국내 게임시장에 열정과 희망을 안고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민 이들이 있었다. 바로 넥슨의 지주회사 NXC 김정주 대표이사와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이사였다.


1994년 12월 넥슨이 설립됐다. 넥슨은 ‘넥스트 제네레이션 온라인 서비스(Next generation on-line services)’라는 뜻으로 김정주 대표가 아버지에게 빌린 자본금 6000만원으로 시작됐다.


당시 김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을 밟다가 게임이 너무 좋아 학업을 접고 카이스트 동기였던 현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를 포함해 게임에 미친 사람 10명과 함께 변변한 사무실도 없이 무작정 넥슨을 창업했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게임 개발을 하는 업체가 국내에는 거의 전무하다 보니 김 대표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러한 선택은 곧 어려움으로 닥쳐왔다. 게임 산업의 특성상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개발 과정과 게임이라는 자체가 사회적으로 인식이 좋지 못하다 보니 외부로부터 투자를 받기 어려웠다. 설립 1년 뒤 넥슨은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할 정도로 벼랑 끝까지 몰렸다.


결국 김 대표는 대기업 홈페이지 제작부터 웹 오피스 프로그램 개발 등 돈이 될 수 있는 일이면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여기서 번 돈은 모두 게임 개발에 투자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96년 12월 ‘김진’의 만화가 원작인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바람의 나라가 세상에 공개되자 초반에는 게임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온라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 함께 소통을 하고 플레이를 하는 경험 자체가 새로웠던 것이다.


하지만 흥행성적은 초라했다. 게임을 하는 동시접속자가 채 30명이 안됐다. 유료서비스를 시작하고 첫 달 매출이 고작 백만원 수준에 그쳤던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시대가 PC통신 시절이라 온라인 환경이 그리 좋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때마침 국내 게임시장에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불면서 PC방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로 인해 PC통신이 사라지고 새로운 인터넷 환경이 조성되면서 ‘바람의 나라’는 이에 대한 수혜를 입게 됐다. 바람의 나라는 스타크래프트 열풍에 편승해 1999년에 이르러서는 동시접속자 12만명을 돌파했고 넥슨은 매출 100억원대를 달성하며 국내 최고 게임사로 입지를 굳혀나갔다.


▲ 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 뉴시스)


‘리니지’ 성공기


이때부터 한국 게임 산업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 열풍으로 넥슨 뿐만 아니라 엔씨소프트 역시 이 열풍에 편승해 수혜를 입었다. 엔씨소프트는 1997년 넥스트 컴퍼니(Next company)라는 뜻을 담아 현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에 의해 설립됐다.


김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85학번으로 우연한 기회에 컴퓨터를 접하면서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열을 올렸다. 당시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국내에는 거의 불모지였던 시절이어서 김 대표를 바라보는 친구들은 걱정이 앞섰다는 후문이다.


이어 김 대표는 컴퓨터연구회라는 모임에서 배우 김희애의 남편이자 드림위즈 대표이사인 이찬진 대표와 함께 ‘아래아한글’ 개발에 참여했고 한메타자 프로그램 안에 들어가 있는 ‘베네치아’라는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베네치아는 화면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낱말을 치며 타자를 연습하는 게임이었다.


이후 김 대표는 엔씨소프트를 설립하고 앞서 넥슨에서 바람의 나라를 개발했던 송재경 대표를 영입해 리니지 개발에 착수한다. 김 대표가 리니지 개발 착수 당시에는 다음이나 네이버 등 여러 벤처기업이 인터넷 환경에서 포털사이트로 성장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김 대표는 포털사이트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과감하게 게임 산업에 뛰어들었다. 김 대표는 1998년 리니지 서비스를 시작한다. 그러나 잘 될 리가 만무했다. 김 대표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집을 은행에 담보 잡혀 대출을 받아 직원들 월급을 주었으며 좁은 방안에서 자고 있는 자녀들을 보면서 ‘잘못돼서 감옥에 가면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잘 돌봐 주시겠지’라고 생각하며 자포자기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스타크래프트 열풍에 김 대표의 리니지는 넥슨의 바람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당시에는 IMF 외환위기로 수많은 회사원들은 구조조정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렸고 졸업을 앞 둔 젊은 대학생들 또한 일자리가 없어 힘든 현실에 좌절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타열풍’으로 동네마다 PC방이 넘쳐나면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잊고자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날을 지새웠다. 이러한 시기와 맞물리며 김 대표의 리니지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리니지의 인기는 당시 국내 게임으로서는 획기적이었던 그래픽이나 사운드뿐만 아니라 여기에 상당히 자유로운 시스템을 도입해 게임 이용자 간에 경쟁을 유발시킨 것이 주효했다.


▲ 리니지2 플레이 화면(사진제공 뉴시스)
이로 인해 ‘리니지 폐인’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으며 공성전(다른 게임자의 성을 공격하는 것), 현질(아이템을 현금으로 사는 것), 현피(현실에서 벌어지는 실제 싸움), 작업장(불법 자동사냥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불법 영업장) 등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사회적 문제로 번질 만큼 리니지가 지니고 있던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이와 같이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90년대 후반 스타열풍에서 촉발된 PC방 포화상태와 맞물리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에는 카트라이더(넥슨), 아이온(엔씨소프트) 등이 대박을 이어가 한국 게임 산업을 주도해 나갔다. 양사는 현재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게임업계 양대산맥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 카트라이더 앱(사진제공 뉴시스)


추가 지분 매입, “적대적 인수합병(M&A)아냐”
일각, 기업결합 승인→M&A 가능성 활짝 열려


불편한 동거


이처럼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게임업계 맹주로 군림하며 승승장구를 이어가던 중 지난 2012년 6월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넥슨 일본법인은 엔씨소프트 최대주주였던 김 대표의 지분 14.7%(320만주)를 인수하며 엔씨소프트 최대주주의 자리에 오른다.


넥슨의 엔씨소프트 지분인수는 글로벌 게임 업체 인수 및 경영을 위해 양사의 대표가 힘을 모으기로 합의하면서 이뤄졌다. 넥슨의 김 대표와 엔씨소프트 김 대표는 세계 최대 게임 업체 중 하나로 손꼽히는 EA(Electronic Arts)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들은 EA를 인수해 글로벌 게임업체로 발돋움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 EA사의 피파15(EA홈페이지)
이에 넥슨은 엔씨소프트 지분을 매입하면서 엔씨소프트 김 대표에게 EA인수에 필요한 실탄을 지원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목표는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EA는 이들에게 경영권이 아닌 지분 일부를 매각할 생각이었으나 양사의 김 대표들은 일부 지분 인수가 아니라 경영권 확보가 목표였기 때문에 EA인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불편한 동거가 불협화음을 내기에 이른다. 지난해 1월 양사는 합작으로 ‘마비노기2’를 개발하기 위해 뭉쳤다. 하지만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프로젝트 개발을 진행하면 할수록 양사의 문화가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않는 것을 깨닫고 1년 만에 프로젝트를 중단해 버렸다.


결국 양사는 당초 목표였던 EA인수도 물거품 되고 공동 프로젝트 마저 무산되면서 의도치 않게 불편한 관계에 이른 것이다. 이런 와중에 넥슨은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들의 실적이 예전만 못해 경영실적이 악화되었고 엔씨소프트는 주가가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치달았다.


이 때문에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투자한 8000억원 상당의 주식이 엔씨소프트 주가 하락으로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상반된 시각


이에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최대주주로서 주가가 본질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하락하고 있다고 판단해 앞서 언급했듯이 엔씨소프트의 주식을 추가로 매입했다. 하지만 이를 놓고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넥슨의 적대적 M&A를 위한 지분 매입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유는 넥슨이 추가로 매입한 지분 0.4% 때문이다. 이 0.4%는 단순한 지분 매입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넥슨은 이번 지분 매입으로 엔씨소프트 지분 15.08%를 보유하게 되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다른 회사 발행주식총수의 20% 이상을 취득하게 되면 이를 공정거래위윈회에 신고해야 하며 상장사의 경우 이를 15%로 적용하고 있다. 또한 공정위에 신고를 한 후에는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엔씨소프트가 상장사여서 넥슨도 이에 해당되므로 현재 공정위에 신고를 마친 뒤 기업결합신고서를 제출해 공정위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넥슨이 제출한 기업결합신고서가 승인되면 향후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주식을 자유롭게 추가 매입할 수 있어 적대적 M&A 가능성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넥슨의 엔씨소프트 지분 추가 매입에 대해 엔씨소프트는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며 일각에서 적대적 M&A를 위한 지분 매입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넥슨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전화 통화에서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해 주식 제고가치를 위해 지분 매입을 진행했다”고 설명하면서 “최대주주인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주식을 매입해 주가하락을 방어하고 주가부양 효과를 거두기 위해 장내매수를 진행한 것으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적대적M&A를 위한 수순은 절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여기에 엔씨소프트 김 대표가 지난 18일 ‘2014 지스타 프리미어’ 행사에서 “넥슨이 한 번도 이야기한 것을 어겨 본 적이 없다”면서 “양사는 특별히 오해를 살만한 일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넥슨과의 비즈니스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 엔씨소프트 R&D센터(사진제공 뉴시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공정위의 기업결합 승인이 내려지면 넥슨은 당장 오늘 내일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적대적 M&A를 진행 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넥슨은 지금까지 여러 게임 업체와 M&A를 통해 몸집을 키워왔다.


▲ 넥슨 사옥(사진제공 뉴시스)
넥슨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상황에 엔씨소프트라고 해서 M&A를 진행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처럼 국내 게임업계 양대산맥인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불편한 동거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업계의 시선은 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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