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그룹 창업주 고(故)정인영 회장, 장남과 차남의 다툼 <왜>[2부]

김영일 / 기사승인 : 2014-08-22 14:14:33
창업주 타계 후 형제간 아쉬운 분쟁…서서히 마무리

▲ 한라그룹 정몽원 회장(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왕자의 난’, ‘형제의 난’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창업 도상에서 일어난 왕자들의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골육상쟁을 일컫는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형제의 난, 시숙의 난 등 ‘쩐’을 둘러싼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2, 3세 경영으로 넘어오면서 지분을 더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왕에 오르기 위해서는 형제간의 피의 혈투가 있었다. 국내 재벌史에서는 시숙, 형제자매, 사촌, 남매를 비롯한 전쟁이 일어난 바 있다. 두산, 현대, 삼성, 금호그룹 등이 그 상처가 남아 있다. <스페셜경제>에서는 창업주의 사망 이후 벌어진 그룹 계승 전쟁, 일명 ‘쩐의 전쟁’을 기획 됐다. 여덟 번째로 故 정인영 창업주의 가문인 한라家에 대해 살펴봤다.


각자 경영스타일 달라…잦은 의견다툼 벌여
장남 몽국씨 제치고 차남 몽원씨 후계자로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아래 동생이자 한라그룹의 창업주 정인영 회장은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나를 지켜준 것은 9할이 역경 이었다”라고 밝힐 만큼 온갖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며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해 오뚝이 정신의 대명사라 불렸다.


후계자는…?


그러한 정 회장은 1997년 1월 장남 몽국 씨(현 배달학원 이사장, 엠티인더스트리 회장)를 제치고 차남 몽원 씨(현 한라그룹 회장)에게 한라그룹의 경영권을 공식적으로 넘겨주었다. 이는 안타깝게도 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분쟁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원래 그룹의 경영수업을 먼저 받은 것은 장남 몽국 씨였다. 1989년 정 회장이 중풍으로 쓰러지자 후계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 무렵 몽국 씨가 그룹이 부회장으로 임명되면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재계는 오랫동안 장자 승계원칙이 주를 이뤘던 분위기였기 때문에 몽국 씨 또한 후계 수순을 밟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몽국 씨는 1976년 현대양행 부장으로 입사해 1988년 인천조선 부사장을 거쳐 1989년 한라그룹 총괄부회장에 올랐다. 이어 몽원 씨는 형인 몽국 씨 보다 늦은 1992년에 부회장에 올라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형제간의 분쟁 조짐은 이때부터였을까? 한라중공업 등 그룹의 주요 사업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몽국 씨와 몽원 씨는 서로의 경영스타일이 달라 각자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의견다툼을 자주 벌이는 등 형제간 마찰이 빈번한 것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정 회장은 차남 몽원 씨의 경영스타일을 받아들여 몽원 씨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이는 정 회장이 장남 몽국씨를 제치고 몽원 씨를 후계자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정 회장의 결정에 몽국 씨는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이듬해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몽국 씨 입장에서는 당연히 장자인 자신이 경영권을 물려받아 아버지 뒤를 이어 그룹을 키워나가려 했던 꿈을 포기하기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결정을 적극 수용하며 별다른 반발 없이 경영권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이후 1997년 1월 몽원 씨가 공식적인 회장 자리에 오르며 한라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외환위기’가 불러온 고통


정몽원 회장은 아버지로부터 한라그룹의 경영권을 넘겨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위기상황에 처하게 된다. 정몽원 회장을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온 나라를 좌절과 시련의 고통을 겪게 했던 ‘IMF 사태’, 즉 외환위기이다. 당시에는 재계뿐만 아니라 정치권 등 국민 모두가 힘들고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


한라그룹 또한 이 고통을 피해갈 수 없었다. 1997년 12월 6일 한라그룹은 외환위기 사태를 이겨내지 못하고 2000%에 달하는 부채를 남기고 결국 최종 부도처리 되는 극한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정 회장이 경영권을 잡은 지 채 1년이 안되었던 시기다. 부도처리 되기 전 한라그룹은 자산 6조 2000억 원, 연매출 5조 3000억 원에 육박하는 재계 12위의 그룹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지급 보증 등으로 인해 자금 위기를 겪다가 외환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에 정 회장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설립된 계열사들을 매각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정 회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RH시멘트를 설립하고 미국 투자금융회사 로스차일드사로부터 ‘브릿지 론(Bridge loan, 브릿지 론은 일시적인 자금난에 빠질 경우 일시적으로 자금을 연결하는 다리(Bridge)가 되는 대출(Loan)이며 한 마디로 임시방편 자금대출 이다)’으로 4000억 원을 대출받아 이 자금으로 한라시멘트 자산, 영업권 등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또한 RH시멘트 지분 70%를 글로벌 시멘트 회사인 라파즈에 매각했다.


이어 정 회장은 RH시멘트 지분을 매각한 대금으로 다시 브릿지 론 대출금을 갚고 남은 RH시멘트 지분 30%를 본인 지분으로 남겨뒀다. 라파즈에 70%의 지분 매각 당시 형 몽국 씨가 가지고 있던 2만 5740주(3.86%)도 함께 매각했다.


구조조정 당시 형의 지분 매각‥다툼의 씨앗으로
“동생 때문에 재산피해”소송 결심‥그러나 패배


나 몰래 지분 매각?


당시 미국에 있던 몽국 씨는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후 2001년 3월 강남세무서로부터 ‘한라시멘트와 한라콘크리트 주식을 양도한데 따른 증권거래서 납부 통지서’를 전달 받으면서 뒤늦게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주식이 처분된 것을 알았다. 몽국 씨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섭섭함을 드러내며 2003년 1월 한라시멘트를 상대로 주주지위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 이어 3월에는 정 회장을 상대로 사문서 위조 및 행사혐의로 고소했고 동시에 주식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정 회장과 법정 다툼에 돌입한다.


몽국 씨는 “본인 소유의 주식을 정몽원 회장측이 마음대로 처분했다”며 동생인 정 회장을 형사고발 한 것이다. 몽국 씨는 소장에서 “본인이 보유 중이던 한라콘크리트와 한라시멘트 주식이 자신도 모르게 제 3자에게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몽국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창업자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순히 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동생으로 인해 겪고 있는 재산상의 피해는 견딜 수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해 소송을 결심하게 됐다”며 당시 심경에 대해 밝혔다.


당시 몽국 씨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1999년 12월 정 회장은 직원을 시켜 자신(몽국 씨)이 소유한 한라콘크리트 주식 2만 5740주를 자신의 동의 없이 구조조정 당시 설립된 RH시멘트에 매도한다는 내용의 주식매매 계약서를 작성토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몽국 씨의 한라콘크리트 보유 주식을 몽국 씨 몰래 RH시멘트에 팔아넘긴 것이고 RH시멘트 지분을 라파즈에 넘길 당시 몽국 씨의 한라콘크리트 지분도 포함이 되었다는 얘기다.


또한 몽국 씨는 정 회장이 자신(몽국씨)이 소유하고 있던 한라시멘트 주식 71만 719주(9.87%)를 서 씨, 안 씨, 최 씨 등 제 3자에게 매도한다는 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토록 측근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즉, 정 회장이 직원과 측근을 시켜 몽국 씨가 보유하고 있던 한라콘크리트 주식과 한라시멘트 주식을 몽국 씨 몰래 매도하도록 시켰다는 것.


일부 승소판결‥기세몰아 또다시 소송


이에 대해 정 회장 측은 적극적인 대응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좌시하고만 있을 수 없던 정 회장 측은 결국 사실과 다르다며 몽국 씨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정 회장 측은 “이는 정인영 창업주의 지시에 따라 행한 것이며 주식을 돌려주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몽국 씨가 주식을 가져가지 않은 채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맞받아 쳤다.


이후 2005년 3월 법원은 “정몽국 전 부회장이 주식의 관리 처분을 부친인 정인영 창업주에게 위임한 상태에서 정인영 창업주의 지시에 따라 정몽원 회장이 정몽국 전 부회장의 소유 주식을 처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문서 위조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05년 11월 17일 서울중앙지법민사 21부(김재복 부장판사)는 “정몽원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라파즈 한라시멘트 주식회사 923만주와 한라건설 76만주 중 각각 391만주와 22만주를 인도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리며 몽국 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당시 액면가와 종가 등을 기준으로 200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이에 몽국 씨는 기세를 몰아 2005년 12월 13일 “주식반환청구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았음에 따라 회사가 발행한 정몽원 회장 명의의 보통주식 1356만여 주 중 정몽국 전 부회장의 몫 총 450여 만주를 돌려 달라”는 주식배당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1심은 몽국 씨의 승리로 기세를 이어갔다. 법원은 기존 한라시멘트 주식 비율에 따라 정몽원 회장 소유의 라파즈 한라시멘트 등 관계 회사의 지분을 정몽국 회장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1심 때와 달리 정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조용히 끝을 맺다'


2006년 11월 29일 서울고등법원 2심 재판부는 “회사 구조조정을 통해 이익을 취득한 자가 있을 경우 이익을 누구에게 어는 범위까지 반환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없어 반환 상대를 특정할 수 없는 데다 귀속대상자에 대한 일반적 합의나 입법적 결단도 없는 상태이므로 원고(몽국 씨)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하며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이는 정 회장이 몽국 씨에게 회사의 지분을 돌려줄 구체적인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최종 결과는 대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앞서 2006년 7월 20일 정 회장과 몽국 씨의 아버지이자 재계의 부도옹이라 불리던 정인영 창업주가 향년 86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는 조심스러웠던 다툼이 이제부터 서로를 물고 뜯어 난타전을 방불케 하는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오히려 정 회장과 몽국 씨의 형제간 분쟁은 서서히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대법원에서 2심과 마찬가지로 정 회장이 승리했다. 이로 인해 2009년 9월 몽국 씨는 한라건설 주식을 전량 처분하면서 한라그룹의 형제간 ‘쩐의 전쟁’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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