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사망사건 속 엇갈리는 길병원 vs 대전협

[스페셜경제=김다정 기자]인천 지역 대표 병원으로 자리 매김 해온 상급종합병원 인천 가천대 길병원을 둘러싼 잡음은 새해가 되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각종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새해 들어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실정이다.


1958년 이길여 이사장이 길병원을 설립한지 6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는 길병원에게 ‘최악의 해’로 기억된다.


난소 혹 검사를 하러 간 환자의 멀쩡한 신장을 제거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의료사고가 발생했고, 경영진의 금품 로비 등 병원 운영을 둘러싼 파문이 일었다.


연말에는 설립 60년 만에 처음으로 노조의 총파업으로 병원 운영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지난달 1일 노사가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하면서 파업은 14일 만에 마무리 됐다.


그러나 병원이 정상운영을 시작한지 20일 만에 노조가 파업 이후 노조탈퇴를 강요하는 등 병원 측의 ‘부당노동행위’ 의혹을 제기하면서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부당노동행위 의혹이 채 해소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전공의 사망사고’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당직 근무를 하다가 숨진 전공의의 사망원인이 ‘과로사’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의료계에서는 공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불거진 길병원의 각종 논란에 대해 자세히 짚어보기로 했다.



과로사아닌 돌연사라더니 최대 59시간 연속 근무?


“열악한 노동환경병원 설립 60년 만에 첫 노조 파업


지난달 1일 오전 9시경 길병원 당직실에서 전공의 신모씨(33)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신씨의 시신 부검을 의뢰했고,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1차 구두 소견을 전달받은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정밀 부검 결과가 나와야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아직 정확한 사망원인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신씨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유가족은 신씨의 사망원인을 ‘과로사’라고 주장하는 반면 병원 측은 ‘돌연사’로 보고 있다.


돌연사라면 누구의 과실도 없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죽음인 반면 과로사라면 과중한 업무나 노동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달 14일 ‘수련환경 개선 촉구 및 전공의 사망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숨진 신씨의 4주간 실제 근무 기록을 공개했다.


대전협이 조사한 근무기록에 따르면 신씨는 지난달 4일부터 이달 3일까지 일주일에 110.25시간을 근무했다. 1월 12~14일에는 주말 연속 당직을 선 후 월요일에도 출근을 해 최대 59시간까지 연속근무를 했다.


이같은 대전협의 조사가 사실이라면 병원 측은 1주일 최대 80시간(수련시간 포함 최대 88시간), 연속 근무 최대 36시간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을 제한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을 위반한 것이다.


이는 앞서 길병원 측이 신씨의 죽음을 과로사가 아닌 돌연사로 표현하며 “수련환경에는 문제가 없었다. 과로사 징후는 발변되지 않았다”고 과로사 논란을 일축한 것과는 완전히 대립하는 내용이다.


대전협 이승우 회장은 “길병원은 법을 지켰다고 말하지만 하루 4시간에 이르는 신씨의 휴식시간은 서류에만 존재하는 것”이라며 “법에서 주 80시간을 상한하고 있지만 만약 주 79시간 근무를 했다면 과연 과로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것이냐”고 호소했다.


대전협이 주장한 과로사 논란에 대해 길병원 측은 향후 나올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입장을 표명하겠다는 계획이다.


길병원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병원 측에서는 법을 준수하는 수준에 전공의 수련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어 과로사는 아니라는 입장”이라며 “정확한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그에 맞는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조 총파업 극적 타결…20일 만에 또 다시 갈등


이번 신씨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의료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의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병원의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근로자는 비단 의사 뿐만은 아니다. 간호사를 비롯한 길병원 노동자들은 지난달 19일 인력충원, 합리적 임금체계 마련 등을 요구하며 이미 한차례 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병원 설립 60년 만에 처음으로 벌어진 노조 총파업이었다.


직원들은 “길병원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병원보다 임금이 적을 뿐 아니라 인력부족으로 노동 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호소했다. 이길여 회장의 생일축하와 사저 수리에 직원들이 동원되거나, 임신도 순번을 정해야 할 정도였다는 주장이다.


장기화될 것으로 보였던 파업은 조합원들과 시민들의 지지로 새해 첫날 1월1일 오전 6시경 극적 타결로 마무리됐다. 노조가 요구한 핵심 사항 대부분이 적용됐다.


길병원 김양우 병원장은 담화문을 통해 “부족한 점은 개선해 나가며 자랑스러운 병원, 일하고 싶은 병원, 행복한 일터로 거듭나겠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변화하게 될 길병원에 대한 근로자들의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길병원은 파업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파업이 종료된 지 20일 만에 노조가 ‘부당노동행위’ 의혹을 제기하면서 또 다시 노사갈등이 불거졌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달 21일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이 종료된 최근에도 일부병동은 폐쇄하고 간호사를 새로운 업무에 일방적으로 배치하는 등 모든 병동에서 부당노동행위가 속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협박하는가 하면 승진 불이익을 암시하고 노조탈퇴도 요구했다는 주장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익명의 제보편지에는 파업 이후 첫 복귀 날부터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서장에게 비판을 받으며 업무를 했다는 사례가 담겨있었다.


열악한 노동환경, 결국 ‘의료 질 하락’으로 이어져


노조 총파업부터 전공의 과로사 의혹까지 길병원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는 결국 ‘국민 건강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병원 내 고강도 노동환경이 계속되면 의료진의 피로누적이 계속되고, 과로한 상태가 이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환자에게 돌아가는 ‘의료서비스 질’이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진의 건강은 의료사고 등의 문제로 번질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난 노조 파업기간 중 길병원 입원 환자 상당수가 불가피하게 퇴원하는 등 환자들의 불편이 잇따랐다.


파업 6일째 기준 전체 입원 환자 1114명 가운데 270명만 남고 75%가 퇴원해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파업기간 중 길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은 응급처치만 받고 다른 병원으로 옮기거나, 파업 전 수술 일정을 잡은 환자들도 기약 없이 기다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의사가 건강해야 환자가 건강하다. 안전한 진료환경에서 최선의 진료가 나올 수 있다”며 “다시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정한 근무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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