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집권 2년차 문재인 정부의 경제 성적표가 초라하다. 경제성장률, 고용지표, 경기선행지수 등 주요 통계지표 중 무엇 하나 낙제점이 아닌 게 없다. 일부 통계지표는 ‘IMF 이래 최악’이라는 수식어마저 딱지처럼 붙고 있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시작부터 유난스러웠다. 전통적 시장중심 경제의 판을 뒤엎고 사람중심 경제를 내세운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을 제시했다.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가계소득을 높여서 매년 3% 이상의 경제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로 1년 6개월 뒤 받아든 성적표는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경제성장률은 수출?투자?소비가 모두 둔화하면서 2%대로 뒷걸음질 치고 있고,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일자리 창출은 13년 만에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며 엎어지고 말았다.


이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소득양극화마저 잡지 못했다. 양극화 해소는커녕 상하위 계층 간 소득격차를 11년 만에 가장 크게 벌리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려면 아직 시기상조라며 이러한 비판을 애써 왜면하고 있지만, 경제 정책 투톱이었던 장하성 전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동시 교체하는 등 절치부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악의 통계지표임에도 정부는 뼈아픈 자기비판도 없다. 통계는 중립적인 데이터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설득력을 가진다. 이 모든 통계자료를 가짜뉴스라 눙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계층 간 소득 격차 11년 만에 최악…지지율 급락 원인?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26~28일까지 사흘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9일 공개한 11월 4주차 주중집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8.8%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주 대비 3.2%p 하락한 것으로 취임 후 지지율이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9주 연속 하락하며 40%대로 까지 떨어지게 된 것은 고용과 투자 등 경제지표가 몇 달째 지지부진하며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약화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현 정부가 강조한 소득주도성장이 제 구실을 못하며 소득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 지지층 이탈을 불러왔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실제로 가계의 소득과 지출을 조사해 살림살이 현황 및 변화를 파악하는 ‘가계동향조사’를 살펴보면 민심 이반의 흐름이 읽힌다.


지난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하위 계층 간 불평등 수준이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기록했다.


올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74만79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 늘었으나,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 소득은 131만7600원으로 7%나 줄었다.


반면 5분위(상위 20%) 가구 소득은 973만57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 증가하면서 상하위 계층 간 소득격차가 2007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


1분위 근로소득의 감소폭이 22.6%까지 떨어진 것은 소득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 규모다. 이는 1분위 가구의 취업 인원수가 16.8% 급감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실업률 13년래 최악…매달 취업자 30만명 공약, 엄두도 못내


실제 인구 대비 취업자 수는 9개월 연속 10만명대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실업자 수는 IMF 외환위기 시절 이후 최대 수준이다. 실업률은 13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고용 상황이 이런 지경인데 가계소득 회복을 논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통계청이 지난 14일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10월 취업자 수는 2709만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만4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당초 매달 취업자 수를 30만명씩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에 못 미친 셈이다.


저소득층이 많은 취약 근로 부문의 고용지표가 특히 좋지 않다.


상용근로자는 35만명 늘었지만, 임시근로자는 13만8000명, 일용근로자는 1만3000명 각각 줄었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10만1000명 줄었다.


고용률은 61.2%로 지난 2월부터 전년동월대비 9개월째 하락세다. 실업자는 97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7만9000명 늘었다. 10월만 놓고 보면 외환위기 시절이던 1999년(110만8000명) 이후 최대 수준이다.


실업률은 3.5%로, 10월 기준으로 2005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다.


고용 지표 악화를 가져온 주요 원인으로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꼽히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된 임금 근로자의 급여는 올라가겠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성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속도 조절을 주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경제 엔진 멈췄다…제조업 평균 가동률 1998년래 최저


내수가 부진해 경영 환경이 나빠지니 기업은 고용을 늘리지 못하고, 고용이 나쁘니 가계소득도 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내수 부진은 경제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제조업 가동률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9월 전체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2.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1998년(66.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제조업 가동률은 생산능력 대비 생산량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조선업이 포함된 기타 운송장비 제조업과 자동차?트레일러 제조업 등에서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력 산업으로 손 꼽혔던 부문에서 성장 둔화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투자와 생산능력이 감소하고 있는데 공장 가동률마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제조업 동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가 뿌리고 흔들리고 있다”며 “위기 논쟁은 한가한 말장난이다”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경상수지 흑자폭마저 감소 중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우리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부 판단에 아주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지난 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108억3000만달러 흑자로, 2012년 3월 이후 79개월 연속으로 흑자를 기록 중이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석유 제품 등 효자 산업을 중심으로 수출이 호조를 보인 결과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122억9000만달러)과 비교해 흑자폭이 줄었기 때문이다. 1~9월 누적 경상수지는 576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612억2000만달러)과 비교해 5.7% 감소했다. 최근 한국 경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OECD도 한국 경제의 전망이 어둡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OECD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한국의 경기선행지수(CLI)는 99.1로 전월(99.3)보다 0.2p 떨어졌다.


OECD 경기선행지수는 6~9개월 뒤 경기 흐름을 예측하는 지표다. 100을 기준으로 그보다 높으면 경기가 확장되고, 낮으면 경기가 하강한다는 의미다.


경기선행지수는 지수 값 자체보다는 상승 흐름인지 하강 흐름인지가 중요하다. 100 이하라도 상승 흐름이면 향후 경기가 회복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기선행지수는 작년 3월 100.98로 정점을 찍고 올해 9월까지 18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2개월만 더 하락세를 이어가면 외환위기 때 20개월(1999년 9월~2001년 4월) 연속 하락했던 때와 맞먹는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지수 값 자체만 놓고 봐도 2012년 11월 이후 6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OECD의 경기선행지수


하강국면 들어선 경제성장률…통계는 가짜뉴스 아냐


문 정부의 경제정책은 최저임금인상으로 가계소득 증가 와 이를 통한 내수 촉진 및 일자리 창출 등이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경제 성장을 끌어올린 다는 것이 당초 전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초 의도와는 다르게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해 위기에 빠지는 모양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탓에 일자리는 줄고, 고용이 악화되면서 소득 격차는 벌어지고,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등 한국 경제는 악화일로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3.1%였던 경제성장률은 올해 2.7%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은 2.6% 수준일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경제가 지난해 하반기 정점에 도달해 하강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 위기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낙관론을 고수하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는 “지금 경제상황을 월별 통계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여당도 정부입장에 힘을 실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이 통계 자료를 왜곡하여 해석한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있다며 “혼란을 줄 수 있는 통계 기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여당은 모르는 걸까? 그런다고 해서 ‘IMF 이래 최악’인 통계 수치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출범을 앞둔 2기 경제팀에서는 달라진 인식을 기대해 볼 뿐이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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