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시민사회-유족 등 “126일 간의 진상조사 결과 발표”

'교육공룡 기업' 에스티유나티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국내 정상급 교육기업 에스티유니타스(이하 에스티)가 그 규모와 영향력에 걸맞지 않은 노동환경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총 2.3조 규모로 최근 상장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에스티에서 최근 한 웹디자이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며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족 측은 과도한 업무와 이에 따른 스트레스에서 빚어진 죽음이라며 에스티 측에 강력히 책임을 묻고 있는 가운데, 사건 발생 130여 일이 지났음에도 사측은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이 유족과 함께 9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진상조사 결과 및 재방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란 이름의 이 자리에는 이정미(정의당) 의원과 에스티유니타스 공인단기·스콜레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위원장 정병욱 변호사, 고인의 언니인 장향미 씨 등이 참여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6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에스티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바 있다. 문제는 같은 이유로 그 이전인 2016년 10월에도 정부의 근로감독을 받았다는 점이다.


유족 측에서 ‘에스티 노동자들의 근로환경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대책위에 따르면 당시 근로감독 결과 에스티 측은 최저임금 미지급, 연장?야근근로수당 미지급, 취업규칙 미신고, 노사협의회 미설치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에스티 측은 여전히 연장근로제한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를 버젓이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지고 있다.


포괄근로계약·억지 일감몰아주기 등 여전히 횡행
ST노동자 우울증 진료율 급증…“제2·3의 사고 가능성”


이번 토론회에서 이정미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앞서 부당노동행위로 논란을 일으킨 ‘넷마블 사건’에 이번 에스티 웹디자이너 죽음을 대입, 청년층이 과도한 노동에 내몰리게 된 현실을 개탄했다.


이 의원은 “1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넷마블 관련 토론을 했던 게 기억난다”면서 “당시 넷마블 직원들의 산재는 인정이 됐으나, 이번 에스티 논란을 보고 우리 사회 만연한 노동 관련 부조리에 다시 직면하게 돼 마음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유족 측, “에스티는 유족 요구를 여전히 묵살하고 있다”


이정미(정의당·사진) 의원은 에스티유니타스 노동자 사망사고를 계기로 포괄임금제 금지 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포괄임금제 금지 법안을 발의하게 된 계기는 에스티 노동자 사망 사건이었다”면서 “기업들의 이 같은 문제가 줄기차게 반복되는 주요인은 사업주에 대한 처벌 작업이 미흡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부당 노동행위가 발견될 경우 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포괄임금제를 포함 에스티는 과거 근로감독 이후에도 여전히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를 이어오고 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대책위 측은 “에스티유니타스는 월 69시간 연장근로를 종용하는 포괄근로계약을 맺고 있었고, 야근을 당연시 하는 기업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며 “억지 일감 몰아주기, 반성문 쓰게 하기 등 직장 내 괴롭힘도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고인의 언니인 장향미 씨는 이날 “지금까지도 에스티는 유족이 요구한 세 가지, 야근근절을 포함한 재발방지책, 책임 있는 진정어린 사과, 책임자 징계 및 처벌 중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책위와의 협의에 성실히 임하지 않으면서도 언론과 내부직원에겐 유족에게 이미 사과했고 유족 요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이야기하며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씨에 따르면 에스티는 근로기준법을 어겨 월 69시간 연장근로와 29시간의 야간근로를 전제로 포괄임금계약을 맺고 별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일일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장씨는 “이것도 모자라 에스티 직원들은 주말 이른 아침 각종 시험장 응원 이벤트에 자발적으로 참가해 응시생들에게 회사 홍보물을 나눠주고 인사평가에 20% 고정 반영되는 점수를 따야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도한 업무로 밤낮없이 계속되는 야근은 스타트업 정신과 열정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됐고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워 회사는 따로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며 기본적인 노무관리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무법인 선 임창식 대표 노무사는 발제를 통해 에스티의 장시간 노동, 업무스트레스를 과중케 하는 요인으로 ‘무한컨펌 까대기’로 인한 ‘초치기작업 및 압축노동’을 꼽았다.


특히 장시간 노동 강요에 따라 신입사원이 남지 못하게 된 회사 구조 역시 문제 삼았다.


에스티 직원 우울증 진료율 급증…“시급한 개입 필요”


고인의 언니 장향미(사진) 씨는 동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보다 큰 여론의 관심을 당부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지난해 에스티 디자인센터의 디자이너 가운데 무려 2/3가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티의 승진정책이 창립멤버나 일부 직원을 소위 ‘찍어’ 고속승진시킨다는 것이다.


임 노무사는 “고속 승진자들을 ‘롤모델’로 만들어 장시간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제시하는 것은 열정페이·과잉경쟁과 장시간 노동에 고통받는 신입사원들에게 면피용 카드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지만 그 경쟁 중 살아남아 고속 승진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고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김미현 노무사는 에스티 측이 자아비판 또는 반성문 형식의 업무보고를 강요하는 등 가학적 인사관리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외에 업무프로세스의 무체계성, 채식주의자에게 고기섭취를 강요하는 등 직장 내 괴롭힘, 과도한 업무와 만성적 야근문화 등이 직원 스트레스를 가중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장시간 노동이 정신건강을 악화, 결국 우울증 증가로 연결된다는 연구 결과가 일관되게 제기된 가운데, 에스티 노동자들의 우울증 진료율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미 의원실이 확보한 건강보험 자료를 통해 드러난 이 같은 사실은 앞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 웹디자이너 사건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고인은 에스티에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포괄임금제 하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 전체 근무일의 17.9%에 달하는 기형적 노동을 하며 우울증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노보연 상임활동가는 “에스티 직원들의 우울증 유병율은 지난해 자살과 과로사 등으로 이슈가 됐던 넷마블의 정신질환 진료율과 유사하며 진료 횟수는 오히려 넷마블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에스티에서 제2, 제3의 과로자살을 막기 위한 적절하고도 긴급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창식(사진) 노무사는 에스티의 장시간 노동, 업무스트레스를 과중케 하는 요인으로 ‘무한컨펌 까대기’로 인한 ‘초치기작업 및 압축노동’을 꼽았다.

현재 구인구직 기업정보 웹페이지 등 온라인 상에선 에스티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지적하는 글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상태다. 그동안 무성의한 대응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고용노동부의 적절한 관리·감독과 회사 차원의 제대로 된 재발방치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한편,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에스티유나티스 관계자는 “현재 유족 측과 성의 있는 자세로 협의 중인 상태”라면서 “지난달 출범한 근무환경혁신위원회를 통해 사내 근로환경 개선을 추진 중이며 이르면 이주 중 구체적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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