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퇴진압박에 불편한 행보(行步) 어디까지

▲ 한국석유공사 본사.

[스페셜경제=황병준 기자]지난 정부 해외자원개발 실패로 막대한 부채에 허덕이는 한국석유공사에 때 아닌 채용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노조가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이들은 왜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일까. 지난 2월 취임한 김 사장은 최근 박근혜 국정농단에서나 나올 것 같은 특혜 채용비리와 비선경영농단 의혹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최근 노조가 실시한 찬반투표에서 찬성률 97.3%가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전직원의 80%가 가입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탄핵이 가결된 셈이다.


취임 10개월만에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석유공사의 흔들리는 김정래 사장을 <스페셜경제>가 살펴봤다.


국석유공사노조는 지난 21일 울산 중구 본사 앞에서 “김정래 석유공사 사장의 채용비리 의혹과 부당특혜 제공, 비선 경영농단을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날 김병수 노조위원장은 “어려운 회사를 살리겠다고 직원들은 임금반납과 복지축소를 감내하며 필사의 노력을 펼치고 있는데, 김정래 사장은 친소관계가 있는 자들을 데려와 과도한 보수를 지급하면서 경영농단을 일삼았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래 사장은 누구(?)


지난 2월 2일 김정래 사장은 한국석유공사 제12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김 사장은 1976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전무, 현대종합상사 사장과 현대중공업 사장 등을 역임했다.


김 사장은 취임 일성에서 “지난 40년 가까이 기업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공사가 재도약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위기의 석유공사의 구원투수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때 아닌 곳에서 발생했다. 바로 낙하산 채용 의혹이 빚어진 것.


김정래 사장은 지난 2월과 4월 전문계약직 3명의 고문과 1명의 본부장을 채용했다. 하지만 이들은 김 사장과 함께 근무했던 현대오일뱅크, 현대중공업 출신이거나 대학교 지인들이었다. 또한 자회사인 OKYC 사장에도 지인인 현대오일뱅크 출신을 선임하면서 낙하산 의혹이 제기됐다.


노조는 이에 대해 ‘경영 정상화’를 위해 임직원 전체가 연봉의 10%를 자진 반납하는 상황에서 평균 연봉이 1억원이나 달하는 별정직을 4명이나 채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문제는 이러한 낙하산 과정에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발생되면서 가뜩이나 낙하산 인사 채용의혹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채용 서류도 마련않돼


지난 19일 노조가 공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김 사장은 취임 후 같은달 24일 경영 관련 고문 전문계약직으로 하이닉스 출신 김 모씨, 4월 1일 현대오일뱅크 출신 또 다른 김 모씨를 특별 채용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김 사장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채용 논란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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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들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면접에 관한 기록이 없다. 자체 감사결과 이 두 사람에 대한 면접은 전화로 이뤄졌고 증거는 남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인사규정에 따라 채용 당시 신원진술서·경력증명서·학력증명서 등 관련 서류를 구비해야 하지만 감사가 이뤄진 지난 9월까지 이력서 내용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가 마련되지 않았다.


감사실은 채용전형 절차에 대한 관리소홀 및 관련 서류 미비 등의 사유로 실무담당자 2명에 경고, 2명에 주의 처분을 내리는 선에서 마무리 되면서 논란은 확대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를 산하기관으로 두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러한 채용 논란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어 추가적인 조사와 징계는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의 한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공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업무의 시금성과 직무의 전문성 등을 고려해 사규에 의거 후보자들에 대해 서류심사와 면접에 의한 특별전형으로 전문계약직 4명을 채용했다”며 해당 채용과정에 문제점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문고리 4인방 ‘경영농단’(?)


일각에서는 김 사장의 특별 채용 논란을 현 시국의 국정농단에 빗대어 주장하고 있다. 이준희 한국노총 울산본부 의장은 “박 대통령과 김정래 사장은 닮았다”며 “대통령은 문고리 3인방으로 국정을 농단했고, 김정래 사장은 문고리 4인방으로 경영을 농단했다”고 비판했다.


▲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

한국석유공사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낙하산 사장이 경영농단으로 공기업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인 김정래 사장은 고등학교 동문이나 자신이 근무했던 대기업 출신을 전문계약직으로 채용해 억대에 가까운 급여를 주고 있다”며 “4명의 전문계약직 중 2명은 비공개 채용했고, 채용계획 수립 당일이나 다음날에 채용 대상자로 확정돼 내정 의혹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좁아지는 입지 “어떻게”


김 사장은 취임 초 경영 정상화를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석유공사는 현재까지 본부 2개, 5개처, 5개의 해외사무소를 폐지, 정원 154명을 감축하는 등 나름의 경영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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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 사장의 낙하산 채용으로 이러한 노력은 한 순간 물거품이 되 버렸다.


한국석유공사노조는 지난달 15일부터 16일까지 양일간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김정래 사장의 퇴진 결의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조합원 92%가 투표에 참여한 결과 조합원 97.3%가 압도적으로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석유공사는 전체 직원의 80% 정도가 노조에 가입돼 있어 사실상 공사가 김 사장에 대해 불신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노조의 김 사장 길들이기란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민간 기업 출신 사장이 수장으로 자리하면서 조직개편과 인력감축 등 강력한 구조조정에 제동을 걸겠다는 노조의 의지라는 것이다. 여기에 성과연봉제 확대와 임금인상 정책을 놓고 유리한 협상 테이블을 선점하겠다는 논리가 반영됐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창사 최대 경영 위기


석유공사는 현재 이명박 정부의 묻지마식 해외자원개발로 창사 이래 최대의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부채 해결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해결책으로 김정래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공사 안팎에서는 나아진 것이 없다는 분위기다.


경영정상화에 팔을 걷어 붙였지만 오히려 논란만 불러 일으켰고, 조직 내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경영 전반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도 크다.


지난 2007년 64%에 불과했던 공사의 부채 비율은 지난해 453%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3조433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4조5000억원의 순손실을 나타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한국석유공사의 영업손실은 3692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손실액은 지난해 4458억원 보다 다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수천억대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국정감사에 더불어민주당 이찬열 의원이 한국석유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00년부터 올해까지 총 24개의 해외광구 개발사업을 추진했다. 이곳에 투자액은 21조에 달했지만 회수액은 약8조8000억원으로 42.3%의 회수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 평가 E등급 낙제점


석유공사는 지난 6월 발표된 2015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한국광물자원공사 등과 함께 최하위 E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김 사장은 대임기간 6개월 미만이라는 인사 조치 제외 조건에 부합해 해임 건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등급 평가에서 최하위를 겨우 면하는 D등급을 받은 바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정래 사장이 취임 10개월이 지났지만 오히려 내부에선 분열이 지속되고 있고 경영정상화란 말이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며 “1년도 되지 않은 김정래호가 낙하산 채용 논란으로 최대 위기를 맡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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