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이 함축적인 단어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대한 서사로는 부족하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설렘과 막연함, 새로운 환경과 문화의 접촉, 낯선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매번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남는 아련함까지…….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 권도윤 기자가 경험한 여행의 순간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편집자주>


나름대로 익숙해진 두바이(Dubai)를 떠나 다른 에미레이트를 둘러보기로 했다. 남서쪽으로 해안을 따라 달리다 보니 팜 주메이라(The Palm Jumeirah)가 나타났다. 이곳은 야자수 모양으로 만든 인공 해변으로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나무기둥에 해당하는 도로만 3km에 달하며 중앙에는 모노레일이 달리고 있으며 주변부에는 아파트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나뭇가지에 해당하는 곳은 개인 사유지로 출입을 막고 있었다.


아쉽게도 팜 주메이라의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는 없었다. 항공 사진을 보면 대단해보이지만 직접 진입하면 그저 도로일 뿐이다.


이런 이상한 간척지를 만든 목적은 해안선 확장이라고 한다. 앞마당이 해변인 별장을 대량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둘레에는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는데 며칠간 해변에서 생활해 보니 간만 차도 크지 않고 파고도 낮아서 이런 아이디어의 실현이 가능한 것 같다.


의아한건 군경 검문소 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무작정 해안선을 넓혀놓는다면 간첩이 침투하기 딱 좋을 텐데 안보의식이 전혀 없는 것일까 아니면 해안 경계에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하다는 뜻인가?


시가지를 벗어나니 사막이 펼쳐져있는데 대부분 공사중이다. 땅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전략적으로 바다를 간척하고 있다.


사막 속으로


공사장은 두바이 근교를 벗어나자 사라졌다. 이제 진짜 상상속의 사막이 등장한 것이다. 파란 하늘과 누런 모래만 존재하는 모습은 묘한 느낌을 준다. 이따금씩 낙타떼를 몰고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아직도 유목민들이 남아있나? 모를일이다.


도로에는 모래 먼지가 자욱하다. 하지만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이유는 먼지 때뿐만은 아니다.
덥다. 계속 덥다. 미칠 듯이 덥다.


몸에서는 마치 덜 잠근 수도꼭지 마냥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물 3.5ℓ를 챙겨왔는데도 부족할 듯 하다. 물에 담근 티셔츠는 30분도 안되어서 다 말라버렸다. 게다가 모래 먼지 때문에 마스크까지 쓰고 다니려니 정말 고역이다. 에어컨이 장착된 버스정류장은 사치도, 돈자랑도 아니라 이곳에선 당연한 일이다.


너무 더워서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종일 달린 끝에 두바이를 벗어났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아부다비 에미레이트다. 알 라바 병원 근처의 공터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해가 졌음에도 열기가 가시지 않아 계속 뒤척이다 간신히 잠들었다.


여기에 해까지 떠오르니 텐트 속은 마치 사우나같다. 주섬주섬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복잡한 시가지를 피하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달린다. 12번 국도가 연결된 야스(Yas) 섬, 싸디얏(Saadiyat) 섬은 마치 거제도나 진도처럼 더 이상 섬이 아니다.


도로상태는 최상이고 오르막도 없고 교통량도 적어 주행에 최적의 상태이지만 문제는 더위다. 고가도로 아래 그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물을 마시려는데 뜨겁다. 불과 한시간 전 구입한, 냉장고 제일 깊은 곳에서 꺼내온 생수다. 게다가 생수병은 태양 복사열을 직접 받은것도 아니다.


내친 김에 컵라면에 부어보니 라면이 익는다. 이런 더위에서 자전거를 탈 생각을 하다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는다.


‘그래, 태양열을 이용하면 부탄가스를 아낄 수 있겠구나’ 긍정의 힘을 믿자. 말도 안돼는 마인드 컨트롤을 시도해 본다.


그나마 주위 경치가 좋은게 유일한 위안이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봐도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바닷물은 투명하고, 백사장에는 알 수 없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아랫부분은 바닷물에 잠겨있다. 소금물 속에서 나무가 자라는 것도 신기하고 나무를 보다 보니 너무 더워서 성큼 물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더 신기한건 모래 사이에서도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가로수는 대부분 대추야자 나무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래 사이에 수도관을 연결해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두바이는 의외로 녹지가 많았다. 이런 방식으로 녹지를 만들었나보다.


물보다 석유가 싼 나라?


도로 가운데 간간히 나타나는 주유소는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 주유소마다 편의점은 물론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화장실도 개방하고 있다. 당연히 편의점에는 에어컨이 나온다.


수차례 지나친 아부다비 주유소는 하나같이 ADNOC라는 문구가 씌여 있고 입구에 가격 표시도 없다. 혹시 국영 기업이 독점하는게 아닐까? 주유원에게 말을 걸어보니 네팔사람이다. 얼마 전 네팔에 있었다고 하니 매우 반가워한다. 참, 역시 아부다비에는 주유소가 한 종류만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휘발유 1ℓ에 1.6디르함(약 480원), 생수 1.5ℓ는 1.5디르함(약 450원). 정말 저렴하기는 하지만 이곳은 익히 들었던 “물보다 석유가 싸다”는 나라는 아니었다.


한참을 달린 끝에 드디어 아부다비 시내에 들어섰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조그만 슈퍼마켓. 음료수 두 캔과 물 1.5ℓ를 구입했다. 이날 마신 물만 벌써 4.5ℓ다.


아부다비에 진입하니 두바이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같은 민족·언어·종교를 갖고 있음에도 어딘가 다르니 혹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신호등 형태도 다르고 건물 양식도 다르다. 전반적으로 고층 빌딩이 더 많은 것 같고 아랍의 색채는 더 옅은 국제도시다. 아직 단정짓기는 이르지만 영어도 덜 통하는 느낌이다. 참, 버스 정류장에도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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