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이 함축적인 단어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대한 서사로는 부족하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설렘과 막연함, 새로운 환경과 문화의 접촉, 낯선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매번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남는 아련함까지…….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 권도윤 기자가 경험한 여행의 순간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편집자주>


어쩌다 보니 네팔에 갖혀버렸다. 다음 목적지였던 파키스탄 비자는 제3국에서 취득이 불가능하다. 결국 어디로 가든 비행기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저가 항공기를 알아보니 대부분 아랍 에미레이트(United Arab Emirates; UAE)를 경유하며 선택한 에어 아라비아는 UAE의 샤르자(Sharjah)라는 곳을 경유한다.


그러다 보니 뜻하지 않게 다음 행선지는 UAE가 되었다. 마침 이란 대사관도 있고 UAE에서 이란까지는 페리도 있다. 비자를 못받더라도 저렴한 항공기가 많아 다양한 대안이 있다.


항공권부터 결제한 후 정보를 찾아보니 호텔 숙박비가 최소 100달러. 야, 이거 이란 비자가 나오는 동안 잠만 자도 100만원은 날아갈 듯 하다.


대책은 안서지만 날짜는 다가왔고 일단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라면, 식빵 등 음식물을 최대한 챙겼다.


샤르자 국제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대로 향하니 흰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구트라(Ghutra)라는 흰색 또는 붉은 천을 두른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공항에서부터 아랍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밤늦게 비행하는 저가항공 특성상 입국심사를 마치니 어느새 새벽 2시가 지나 있었다. 일단 잠부터 자야겠다. UAE의 첫날밤은 공항 청사 앞에서 노숙으로 해결했다.


모래바람 날리는 낯선 공간


샤르자 국제공항을 벗어나려는데 뭔가 상당히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이유는 차선 때문이다. 그간 거쳐온 말레이시아, 인도, 네팔은 모두 좌측통행이었는데 UAE부터 우측통행으로 돌아왔다.


공항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모래가 보인다. 역시 아랍이구나. 바람이 불면 도로위로 모래가 날리는데 아스팔트 위에 하얗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래띠는 마치 뱀처럼 보이다. 아무튼 이정도 모래사장이나 공터가 있으면 숙영지를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주위에 보이는 모스크와 야자수는 더없이 이국적이다. 샤르자 시내로 진입하자 차량 통행이 많아지고 고층 건물이 늘어서 있다.


샤르자에서 잠시 자전거를 달려 보니 인도와는 정말 딴판이다. 도로는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참 조용하다. 그 시끄럽고 위협적이던 막무가내식 경적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신호가 바뀌면 정지선 앞쪽에서 멈춘다. 여러모로 주행 여건은 나쁘지 않은 듯 하다.


언제부터인가 두바이(Dubai) 표지판이 사라졌다. 경계석이나 표지판도 없었지만 두바이에 들어온 것이다. 대체 어디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두바이에는 차량이 더 많고 빌딩이 더 높아졌다. 샤르자가 개발중인 신도시라면 두바이는 완성된 도시 같은 느낌이다.


두바이 Creek이라는 부교가 설치된 작은 강이 보인다. 배가 지나다닐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강물 바로 위에 있어 시원해보인다.


두바이에 들어서자 도로에서 위협을 느낄 수 있었다. 인도-네팔의 엄청난 엔진소리를 뿜어내는 차량은 불과 30~40km/h 이하로 달렸는데 여기서 조용히 스쳐지나가는 차량은 정말 빠르게 달린다. 잘못 스치기만 해도 위험하다. 또한 신호등은 거의 없고 사거리는 대부분 회전 교차로 형태거나 고가도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고가도로를 잘못 타면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차량은 멈춤없이 달릴 수 있지만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여러모로 위험한 환경이다.


달릴수록 건물은 더 화려해진다. 아 저 멀리 촛대처럼 보이는 건물이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칼리파(Burj Khalifa)구나. 길을 확인하려 멈출때 마다 촌닭마냥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다.


각국 대사관이 위치한 주메이라(Jumeirah) 지구에는 고층 빌딩은 없었다. 대신 ‘저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법한 주택들이 즐비하다.


이란 대사관에 도착하니 이미 문을 닫았다. 다음날은 금요일인데 이곳은 휴일이 금, 토요일이다. 이틀은 어디서 뭘 하고 버틸까?


두바이, 잠자리를 찾아 헤매며


이제 숙소를 준비해야 하는데 두바이에서 가장 저렴한 유스호스텔의 공용격실(도미토리) 마저 100디르함(약 30,000원)이다. 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공동격실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다시 20km가량 되돌아가기도 귀찮다. 지도에 따르면 주메이라 근처는 다 해변이므로 어딘가 숙영할 공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무지 해변으로 들어갈 수 가 없다. 바로 앞이 바닷가인건 확실한데 도로와 해변 사이는 주택으로 막혀 있고 틈새 도로는 사도(私道·Private road)라며 출입을 막아놓은 것이다.


해변이 별장인지 저택인지 모를 건물의 앞마당이라니. 전복 양식장도 아니고 해변을 막아놓은 것은 상당히 낯설다.


게다가 유료(Dh5)인 주메이라 비치 파크는 23시까지만 개장하며 철문 앞에는 경비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공터는 밤에 차가 들어오면 위험하다. 막막할 뿐이다.


다시한번 가이드북을 찾아보니 24시간 개장하는 주메이라 오픈 비치가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일단 가 보자.


직접 가보니 오픈 비치는 아주 편안한 숙소였다. 우선 무료 화장실과 샤워장이 있고 공용 샤워장은 온수까지 나온다. 모래 사이에는 우레탄 조깅 트랙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몸도 풀 겸 잘 깔린 트랙을 따라 외국인들과 자존심 경쟁을 하며 구보를 즐긴다. 열도 식힘 겸 깨끗한 바다에서 수영하면 작은 물고기는 물론 얼굴만한 크기의 거북이 헤엄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무료 샤워장에서 온수 샤워로 마무리한다.


낮에는 시내를 구경하고 저녁에 해변으로 돌아오면 걸프만 사이로 사라지는 태양을 보는 것도 즐겁다.


주말을 오픈비치에서 보냈고 일요일(평일)이 되자 관리요원이 찾아와서 텐트설치는 금지라면서 철수하라고 한다. 상관없다. 이틀을 지내 본 결과 밤에 춥지도 않고 이슬도 없다. 밤새도록 노는 사람도 많으니 누구하나 이상하게 안 볼 것이다. 몸에 딱 맞는 방파제 바위틈을 찾아 두바이 생활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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