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이라 읽고 ‘갑질이라 부른다’

[스페셜경제=황병준 기자]최근 현대건설을 비롯해 대우건설 등 7개 건설사들이 한국도로공사(김학송 사장, 이하 도공)를 상대로 공사 기간 연장에 따른 추가 비용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해당 건설사들은 지난 2008년 발주한 ‘고속도로 12호선 담양~성산 간 확장공사 기간 연장으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도공의 요구대로 계약서에 계약기간가지 명시했지만 도공은 이를 무시하고 이 휴지기간에도 공사를 강행해 추가요금이 발생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관급공사를 발주하는 도공이 관행적으로 건설사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도로공사의 ‘갑(甲)질’ 논란을 살펴봤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공공기관 발주 횡포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법의 판단을 요구했다. 현대건설과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한화건설, 두산건설, 대창건설, 대저건설 등 7개사는 한국도로공사가 지난 2008년 발주한 고속도로 12호선 담양~성산 확장공사의 공기 연장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이들은 공사를 낙찰 받은 뒤 도공의 요구로 2월 1일~4월 30일, 7월 1일~9월 21일 등은 공사 휴지(休止)기간으로 계약기간에서 제외하고 ‘추가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었지만 실제로 도공은 이를 무시하고 휴지기간에도 건설사에게 공사 강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공공공사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추가비용까지 부담하게 되면 더 큰 손실을 입게 된다”며 “이런 의미에서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소송에 참여한 건설사가 6개 공구여서 전체 14개 공구의 건설사까지 소송에 참여하면 자칫 건설업계와 도로공사의 싸움으로 까지 파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관행에서 비롯된 갑질(?)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의 핵심은 ‘관행에서 비롯된 갑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불공정거래에 대해 ‘을(乙)의 입장’에 있는 건설사들이 항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관행이란 명목으로 지금까지 이어 왔다고 건설사들은 주장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등 관급공사를 하는 발주처들은 도로와 항만 등 국가 성장에 기반이 되는 사회간접자본(SOC)을 발주하고 있기에 건설사들에게는 절대 갑으로 굴림하고 있다. 자칫 발주처에 밉보이게 되면 향후 공사에 막대한 차질이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국가를 상대로 하는 공사에서 국가계약법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했지만 이제 집단적으로 공공연한 반기를 든 것이다.


건설사, 도공에 추가 비용 소송…“더 이상 못 참아”
‘관급’우월적 지위 이용 관행 처리…파장 어디까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소송이 최근 급격히 악화된 수익성과도 관계가 있다”며 “국가를 상대로 하는 계약에서 밀려도 예전 보다 리스크가 약화된 것도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발주처인 공공기관 역시 부채감축 등의 이유로 설계변경 등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출되는 비용을 건설사에 전가하는 문제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담양~성산 간 확장공사에서 기간 연장으로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공구는 전체 14개 공구 가운데 6개여서 나머지 공구를 맡은 건설사들도 소송에 참여를 저울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도로공사의 한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진행 중인 소송 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어렵다”며 “소송 결과에 따라 대응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발주처 눈치에 ‘발만 동동’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말 “도공이 휴지 기간 건설사들에게 공사현장의 유지·관리의무는 부과하면서도 비용은 일절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당한 거래조건을 설정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어 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현행 국가계약법상 발주기관 요구로 설계를 변경할 때 계약 단가는 설계변경 단가와 설계변경 단가에 낙찰률을 곱한 금액 중 하나로 정할 수 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경우에는 두 금액의 평균으로 정하게 돼 있다.


하지만 그동안 공공기관인 발주처는 관행적으로 건설사에 설계변경 등 기타 비용처리 돼야할 부분에 대해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건설사 역시 이런 압력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며 발주처 눈치만을 봤던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전체적인 비용은 소송을 진행하면서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나머지 8개 공구 공사를 맡은 다른 건설사들도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관련 법무법인 측은 “재판 진행 과정에서 추가 공사비 감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구별로 최대 100여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며 “14개 공구 모두 소송에 참여하면 소송금액만 14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 파장 어디까지


이번 소송의 파장이 건설업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예측이다. 대다수의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계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건설업계는 도공의 불공정 계약에 대한 소송을 계기로 대다수의 발주기관의 계약과 공사감독, 인허가 전반을 둘러싼 갑의 횡포 방지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응입장을 제시할 태세로 이번 사건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건설에 이어 소프트웨어사업(SW), 전자·통신(IT) 사업 분야에서도 공공기관 부당 발주 문제 잡음이 지속돼 온 만큼 추후 이들 업계들에도 이번 소송에 후속으로 발주처를 상대로 한 소송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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