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대신 ‘뒷돈’ 캐다 ‘딱 걸려’

▲한국석유공사
[스페셜경제=황병준 기자]MB정권 자원외교의 첨병 역할을 담당하던 한국석유공사가 잇단 부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자원비리의 중심에 서고 있다. 정부는 자원외교 부실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고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무분별한 해외자원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됐다는 판단 하에 전 방위적인 자원외교 수사를 펼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가 최대 사업으로 추진된 하베스트 인수는 최악의 부실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에 경남기업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러시아 캄차카 석유광구 탐사과정에서 정부지원금을 빼돌린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검찰은 지난 18일 한국석유공사를 압수수색하며 비리 의혹을 집중 살펴보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자원외교의 선봉장으로 국민적 기대를 높였던 한국석유공사가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한 이유를 살펴봤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자원 수입 대국’이란 말로 자원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대한민국. 우리에게 해외자원 개발은 필요를 넘어 필수로 전락한지 오래다. 하지만 천문학적 자금과 장기간의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해외자원개발은 녹녹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해외자원 첨병 ‘석유공사’의 배신


지난 MB정부 자원 개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곳은 다름 아닌 한국석유공사다. 석유공사는 하베스트 등 해외자원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천문학적자금이 투입된 해외자원개발은 기대와는 달리 부실의 화(禍)를 낳고 있다.


지난 정부 자원 외교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손꼽히는 캐나다 '하베스트(Harvest Trust Energy)' 인수는 한국석유공사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이로 인한 손실금액만 1조3300여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1월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이 하베스트 인수 계약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검찰에 강 전 사장을 고발했다.


檢, 석유공사 전격 압수수색…MB정부 자원외교 의혹 수사
하베스트 실패에 숱한 의혹 묻혀…상대 자문료까지 지불



하지만 강 전 사장은 하베스트 날을 인수하기로 결정했을 때 최경환 부총리와 직접 만나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화살을 최 부총리에게 돌렸다.


최 부총리는 “강영원 전 사장으로부터 하베스트 인수를 들은 것은 딱 한 차례로 하베스트 인수는 취임 훨씬 전부터 추진돼 온 사업”이라며 “강 사장이 하베스트를 인수하는데 '날'을 포함하지 않으면 팔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석유공사는 하류부문은 경험이 없어 경영 리스크가 크니 잘 판단하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40억달러가 넘는 사업에 지경부 장관의 지시 없이 석유공사가 독단적으로 인수를 추진했을 가능성이 낮아 최 부총리의 하베스트 인수 의혹은 짙어만 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석유공사는 하베스트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매각사쪽 자문료까지 지급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은 가중되고 있다. 매입사인 공사가 매각사 자문료까지 부담한 것이다.


18일 국회 자원외교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김제남 정의당 의원이 석유공사로부터 제출받은 ‘하베스트 매각 자문 계약서’ 등을 보면, 유전개발 및 정유 업체를 거느린 하베스트 지주회사는 2009년 석유공사에 하베스트를 매각하기 직전, 캐나다 티디시큐리티스(TD Securities)사와 매각 자문 계약을 맺었다.


매매에 성공하면 1200만달러(약 132억원)라는 막대한 ‘성공보수’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그해 10월 21일 석유공사와 하베스트 대주주는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티디사가 매각 자문료를 지급받은 시점이 하베스트 매매가 완료된 뒤인 2010년 2월3일. 당시는 석유공사가 하베스트의 실소유주여서 사실상 석유공사가 매각사 쪽 자문료까지 지급한 꼴이됐다. 하베스트 매매는 2009년 12월22일 대금이 지급되면서 종결됐다.


석유공사는 측은 “하베스트를 매입할 때 부채까지 인수했는데, 이 부채항목에서 매각사 자문료 1200만달러를 뺐다”며 “전체 매입금액에서 차감했기 때문에 이중 부담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끝나지 않은 ‘날’ 매각史


지난해 11월 한국석유공사는 부실 인수 논란이 되고 있는 정유업체 하베스트의 자회사 ‘날’(NARL)을 손해를 감수하면서 되팔았다고 밝혔다. 2009년 1조원을 들여 인수했지만 1조 7천억원까지 불어난 적자를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날은 아직도 석유공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JTBC에 따르면 지난 19일 한국석유공사가 매각했다는 날이 아직 최종 매각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발단은 날의 원유탱크 공사를 맡았던 매트릭스사가 비용을 초과했다며 날을 상대로 낸 소송 때문. 하지만 소송이 끝나기 전 석유공사는 미국계 상업은행인 실버레인지에 매각했다. 그런데 올 초 법원은 “40억원을 매트릭스에 보상하라”는 중재결정을 내려졌다. 이에 따라 한국석유공사와 실버레인지사는 서로 상대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만약 석유공사의 책임으로 결정 나면 석유공사는 날로 인한 피해가 다시 추가될수도 있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압수수색’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는 지난 18일 울산에 위치한 한국석유공사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여기에 경남기업 본사와 이 회사 회장인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검찰의 자원외교 전반에 대한 부실을 집중 수사하겠다며 밝혔다.


경남기업 등 대형 건설사도 참여…‘성공불융자금’ 논란 왜
정치권 말 한마디에 이라크서 퇴출 위기…외교 분쟁 조짐



석유공사와 경남기업 등이 참여한 한국컨소시엄은 2005년~2009년 러시아 캄차카 광구 탐사에 3000억원 가량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비리가 포착된 것이다.


당시 한국컨소시엄은 사업 지분 45%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석유공사(27.5%)와 경남기업(10%), SK가스(7.5%) 등이 참여했다. 이 사업은 개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석유공사도 2010년 사업 철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은 이 과정에서 광구의 기대수익률이 매우 낮다는 지적을 받고도 한국컨소시엄이 사업을 추진한 배경과 수익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사업비를 처리한 것 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 수사선상에 오른 공기업 및 민간기업의 사업 내용과 자금 흐름 등을 포괄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성공불 융자금 논란…<왜>


검찰의 경남기업 압수수색에는 100억원의 성공불융자금에 대한 유용 혐의도 포함돼 있다. 경남기업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석유공사로부터 받은 성공불융자금은 약 330억원이며, 이 중 상환된 금액은 230만원에 불과하다.


검찰은 경남기업의 융자금 일부가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일가의 계좌로 흘러간 정황을 잡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석유공사와 공모해 예상수익을 부풀리거나 가짜 증빙서류를 만들어 융자금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성공불융자는 정부가 리스크가 높은 사업을 하는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대여하고 사업 실패시 융자금 전액을 감면해주는 제도로 경남기업은 2006년 502만달러, 2007년 1849만달러, 2008년 686만달러, 2009년 22만달러, 2010년 70만달러, 2011년 33만달러 등 총 3162만1750달러의 성공불융자금을 받았다.


2006년 무렵부터 해외 자원개발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시도한 경남기업은 성공불융자금을 러시아 캄차카 석유탐사, 카자흐스탄 카르포브스키 가스 탐사, 아제르바이잔 이남(INAM)광구 석유 탐사, 미국 멕시코만 가스 탐사, 카자흐스탄 카르포브스키 가스 탐사 등의 명목으로 지원받았다.


검찰은 경남기업이 사업비를 부풀려 융자금을 과도하게 지급받았거나 애초 자원개발 사업에 융자금을 사용할 계획이 없음에도 융자금을 받아 다른 사업에 전용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성공불융자금 자체가 정부가 자원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마련된 합법적인 제도인 만큼 이자금을 지원받은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이 자금이 자원개발에 쓰였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 말 한마디에


석유공사의 이라크 사업도 최대 위기를 맞았다. 1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투입된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내 유전개발 사업에 최근 문제가 감지됐다. 발단은 정치권에서 불기 시작했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는 지난 12일(현지시각)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아슈티 하우라미 쿠르드자치정부 천연자원부 장관이 석유공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공식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 의원이 제기한 하우라미 장관의 뇌물수수 의혹이 쿠르드자치정부 내 정치 문제로 번지고 있어서다. 전 의원은 지난 1월 석유공사가 바지안 광구 개발을 위한 서명보너스 등의 명목으로 쿠르드자치정부에 3140만달러(한화 약 323억원)를 지급했는데 이 돈이 뇌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석유공사가 하우라미 장관이 지정한 영국 런던 HSBC 계좌에 입금했는데 이 돈이 입금된 것만 확인될 뿐 쿠르드자치정부 측으로 들어간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전 의원은 “하우라미 장관에게 준 뇌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이라크 고위관료 뿐 아니라 국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과 나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쿠르드자치정부는 이에 대해 “서명보너스를 적법한 계약에 의해 지급받았으며 정부 사업에 정상적으로 쓰였다”며 “악의적인 거짓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런던 HSBC 계좌에 대해서는 “하우라미 장관의 개인 계좌가 아닌 천연자원부의 계좌”라고 설명했다.


또 성명서를 통해 석유공사와 맺은 계약서 원본, 2008년 석유공사로부터 받은 총 2억 3550만달러의 입금 및 사용 내역 등을 첨부했다.


쿠르드정부는 전 의원에게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한국에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자칫 외교 분쟁으로 번질 수 있는 가능성까지 생겼다.


여기에 더욱 우려되는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 석유공사의 유전개발권이 박탈당하면 투자한 1조원에 대한 향방은 보장할 수 없어 석유공사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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