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운명 결정짓는 사람들은 롤렉스를 찬다’

[스페셜경제=이하림 기자]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명품(名品). 연간 5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명품 시장은 세계 5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샤넬, 프라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이들 브랜드를 모르는 이들은 없다. 특히 샤넬은 국내에서 ‘샤테크(샤넬과 재테크를 합한 말)’란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정작 샤넬이 나치 스파이였으며, 코드명은 ‘웨스트민스터’라는 사실과 ‘이브 생 로랑’이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였다는 점. 심지어 대부분의 브랜드가 실제 디자이너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도 모른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왕족, 귀족이 소유했던 명품이 아닌 가난했던 코코 샤넬이 스스로 일군 브랜드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스페셜경제>에서는 연간 기획으로 유명 명품브랜드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독자들께 전해주고자 한다. <편집자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계 브랜드하면 단연 ‘롤렉스’가 떠오른다. 롤렉스는 1800개 시계 브랜드가 참가하는 스위스 바젤월드에서 매년 가장 좋은 자리에 가장 큰 규모의 부스를 설치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스위스 시계 학교에서도 수석 졸업생에게 롤렉스를 증정한다. 시계 전문가들도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훌륭하고 값비싼 수많은 시계 브랜드가 존재하지만, 시계마니아들 사이에는 “결국에는 롤렉스를 산다”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손목시계에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지난해 초 프랑스의 광고계 거물 자크 세겔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 50에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지 않은 사람은 실패한 인생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며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명품 시계 브랜드 롤렉스는 방수 시계, 자동태엽 시계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지며 시계 역사에 크게 기여했다.
롤렉스의 창시자 한스 빌스도르프는 1881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12살에 고아가 된 그는 19살이 되던 해 스위스 라쇼드퐁 지방에 위치한 무역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당시 스위스 라쇼드퐁은 시계 산업의 중심지였고 그가 일했던 무역회사 역시 많은 시계를 전 세계에 유통했다. 그곳에서 한스 빌스도르는 시계 제조산업과 유통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성능’‥시계 브랜드의 ‘명성’ 이뤄내
‘성공=시계’ 공식‥세계 최초 타이틀
24살이 되던 1905년, 사업파트너인 알프레드 데이비스와 함께 런던에 손목시계 유통업체인 ‘빌스도르프&데이비스’를 설립했다. 이들은 속목시계의 경우 무브먼트가 작아 회중시계보다 정확하지 않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들로부터 소형 부품들을 납품받아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현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롤렉스’ 브랜드의 시작이다.
이후 롤렉스 브랜드는 1908년에 정식으로 등록됐다. 롤렉스라는 이름은 ‘정교한 시계’라는 뜻의 프랑스어 ‘오를로주리 엑스퀴즈’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지만, 한스 빌스도르프가 손목시계의 다이얼 위에 새길 짧고 발음하기 편한 단어를 찾던 중 결정했다고 한다.
최초 방수·방진용 ‘오이스터 케이스’
1926년 롤렉스는 한 번 입을 다물면 물이 들어가지 않는 굴에서 영감을 받아 세계최초의 방수·방진 ‘오이스터 케이스’를 개발했다. 이 케이스는 롤렉스 시계 기술자들이 별도의 공구를 사용해야만 열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전체를 단일 금속 덩어리에서 찍어내 시계 케이스를 구성하는 베젤, 케이스백, 와인딩 크라운이 이음새 없이 꽉 맞물려져 있다. 케이스백과 베젤은 톱니바퀴 모양의 홈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고, 트윈록 또는 트리플록 크라운을 장착해 내구성을 더욱 높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오이스터 출시 1년 후인 1927년 런던의 속기사인 ‘메르세데스 글라이츠’는 롤렉스 오이스터 시계를 착용하고 10시간 동안 도버해협을 수영으로 건넜고, 이때 시계는 완벽한 방수 상태를 유지해 성능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롤렉스는 이 횡단을 기념하기 위해 ‘데일리 메일’지의 일면에 방수 시계의 뛰어난 성능을 알리는 전면 광고를 실었고, 이를 통해 각계의 유명인사들을 홍보 대사로 임명하는 롤렉스의 테스티모니얼 광고 콘셉트가 시작됐다.
최초의 자동태엽 시계, 퍼페츄얼 로터
1931년 롤렉스는 현대 자동 시계 매커니즘의 기본이 되는 최초의 자동태엽 시계 ‘퍼페츄얼 로터’를 개발하며 또 한 번 시계 역사에 큰 획을 긋는다. 퍼페츄얼 로터는 착용자가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시계 내부의 태엽이 자동으로 감겨 그 동력으로 시계가 작동하게 되는 원리다. 이 자동태엽 시계는 손목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감지해 이를 동력으로 자동 변환시켜 준다. 이 시스템은 오늘날의 현대식 오토매틱 시계의 뿌리가 된다. 이 무브먼트는 8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지금의 중국 무브먼트보다 훨씬 좋은 마감을 보여줄 정도라고 한다.
롤렉스를 정상에 세운 마케팅
롤렉스는 마케팅에 뛰어난 브랜드다. 오이스터의 도버해협 횡단뿐 아니라 롤렉스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위해 마케팅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테스티모니얼 광고’라는 광고기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는 어떤 인물이 상품에 대해 증언하는 방식의 광고를 뜻한다.
1953년 존 헌트 경이 이끌었던 원정팀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텐징 노르게이는 퍼페츄얼을 손목에 차고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다. 그 후 여러 탐험대들이 히말라야, 북극, 사하라, 사막 등을 탐험할 때 롤렉스 시계를 애용했다.
1960년에는 심해 잠수정인 ‘트리에스터 호’에 롤렉스의 딥씨 스페셜을 부착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의 최심층부인 수심 10,916m까지 내려가고도 정상적인 성능을 유지했다. 이후 50년이 지나도록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테스티모니얼 광고뿐만 아니라 롤렉스는 작은 수족관을 시계상들에게 나눠주고 시계를 수족관 안에 진열하도록 했다. 이는 현대에도 카메라, 휴대폰 등 방수 제품을 내놓는 많은 회사들이 모방하고 있을 정도로 탁월한 마케팅 전략으로 꼽힌다.
롤렉스의 혁신적인 광고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세계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람들은 롤렉스를 찬다’라는 광고문구를 낸 롤렉스는 샤를 드골, 드와이트 D, 아이젠하어, 존F 케네디, 리처드 닉슨, 윈스턴 처칠 등 국제적인 거물 정치인들에게 무료로 시계를 선물했다. 이로써 롤렉스는 최고만이 차는 시계로 자리매김했다.
“세상 그 어떤 사전에도 우리가 하는 일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지만 전통이라고만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무한이라는 단어도 너무 제한적이고, 지속이라는 단어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조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탐험하지만 조각가, 화가, 탐험가는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드는 유일한 것이며 앞으로도 유일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롤렉스 웨이’만 있을 뿐.”
박스기사

롤렉스는 지난 2003년 ‘롤렉스 코리아’ 한국지사를 설립했으며 스위스 법인 Rolex Holding SA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


2012년 매출은 781억원, 2013년 매출은 859억원(2013년 분기보고서 기준)을 기록했다.


최근 명품 시계는 역사성과 희소성, 경제적 가치를 두루 갖춘 소비재로 평가되며 중고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오래 될수록 가치가 올라가 신품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이른바 ‘시계 재태크’라는 말도 생겨났다.


수입시계 시장 규모가 1조원 이상으로 불어난(2013년 10개 주요 수입시계 업체 매출 기준) 현재 서울시내에 중고 수입시계를 취급하는 매장은 100여곳으로 추정되며, 온라인 오픈마켓과 시계 커뮤니티를 통한 중고 거래 시장도 대폭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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