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왔수다. 핸드폰 좀?”…삼척항 ‘해상판 노크귀순’ 논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북한 목선의 동해 삼척항 진입 사건과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스페셜경제=신교근 기자] 강원도 삼척시 삼척항 주민이 밝힐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해상판 노크귀순’ 사건이 있다. 바로 지난 12~15일에 벌어진 대한민국 군·경의 ‘해상 경계작전 실패’ 참사다.

지난 15일 오전 6시 20분, 북한 주민 4명이 탄 목선이 대한민국 삼척항 부두에 정박했다. 이들 중 2명은 부두에 내려 대한민국 영토에 발을 디뎠다.

이에 놀란 삼척 주민이 신고하고서야 해경 순찰차와 해경 경비정, 군 병력이 부랴부랴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2명은 귀순했고, 나머지 2명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 들어 6.25 전쟁 이후 분단된 남한과 북한의 왕래가 자유로워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우리 영해 150여km를 휘젓고 다녀도 아무런 제지 없이 대한민국 삼척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바로 동해안의 해상경계작전을 담당하는 해군 1함대와 육군 23사단, 해양경찰의 ‘3중 감시망’이 뻥 뚫렸기 때문이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작전 실패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 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경계에도 실패하고, 이를 덮기 위해 거짓말까지 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스페셜경제>가 북한 목선이 최신형 스텔스기도 아닌데 이를 포착 못한 우리 군의 해상 경계실패 참사와 9·19 남북군사합의가 불러온 대한민국 안보 현주소에 대해 짚어봤다.

‘납북군사합의’&‘2018 국방백서’

文정부 출범 이후 주적 없어진 軍

 

19일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 주민 4명이 타고 온 목선은 길이 10m, 폭 2.5m, 무게 1.8t에 28마력짜리 엔진이 달려 있었다. 북한 목선은 아직 파기하지 않았으며, 강원도 동해1함대사령부에서 보관 중이다.

지난 9일 북한 함경북도에서 출항한 이 목선은 11일과 12일 위장조업을 하다가 12일 오후 9시 NLL 남쪽으로 내려왔다. 13일 오전 6시 울릉도 동북쪽 55km 지점에 도착한 뒤 기상악화로 기관을 정지한 채 표류했다.

이후 강원도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린 이들은 14일 밤 9시 삼척항 동쪽 4~6km 떨어진 해상에 도착하고 엔진을 끄고 대기했다. 한밤중 입항하면 한국군이 대응사격 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15일 동이 트자 엔진을 다시 가동한 이들은 유유히 삼척항 부두 끝에 접안했다. 삼척 주민은 새벽 산책을 나왔다가 목선을 발견했다. 당시 북한 목선은 이미 방파제에 정박된 상태였다.

이들을 최초 발견해 112 신고를 한 건 삼척 주민이었다. 북한 선원 중 한명은 주민에게 “북에서 왔다”며 “서울에 사는 이모(탈북인)에게 전화를 하고 싶으니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말했다.

이에 삼척 주민은 오전 6시 50분쯤 “북한 말을 쓰는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112에 신고했고, 오전 7시 35분 무렵 해경 경비정이 접촉해 해당 선박을 보안 유지가 용이한 동해항으로 예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장공비였으면 어쩔 뻔 했나”…“다 죽었을 것”

갑작스런 북한 선원의 출현으로 삼척 주민들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1968년 울진·삼척에 북한군 무장 공비 120명이 넘어와 49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고, 1996년 북한 잠수함이 강릉 앞바다까지 침투해 북한 공작원 26명이 우리 군경과 격렬한 전투를 벌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척항 인근 주민은 ‘채널A’와의 인터뷰를 통해 “무장했더라면 우린 다 죽었을 것”이라며 과거 기억들을 떠올리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당초 군 당국은 ‘해상에 표류해왔다’, ‘해류에 떠내려 와 발견됐다’, ‘발견 지점은 삼척항 인근해상이다’, ‘어디에서도 북한 어선이 탐지되지 않았다’ 등의 발표를 했지만, 이는 다 거짓으로 드러났다.

앞서 밝혔듯이 북한 목선은 해류에 떠내려 온 것이 아닌 순전히 계획적 귀순이었고, 삼척항 인근해상도 아닌 삼척항 부두까지 정박한 것이다.

우리 군 당국이 해상경계에 큰 구멍을 드러낸데 대해, 유일 야당임을 자처하는 제1야당에선 9·19 남북군사합의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 어선이 유유히 삼척항까지 내려왔지만 우리 군은 아무도 몰랐다”며 “경비는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다행스럽다고 해야 하나. 만약 어선에 무장공비가 타고 있었다면 어쩔 뻔 했나”라고 당혹감을 드러냈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국방 무력화와 안보파기로 안보해이를 불러왔다”며 “9·19 군사합의를 무효화하고, 우리 군의 경계 태세를 원상 복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지난 19일 당 정책의원총회를 통해 “대한민국 안보는 군이 아닌 어민이 지키고 있었던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안보가 뚫리고 완전히 무장해제된 것은 바로 9·19 남북군사합의 때문이기에 이를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에서도 군 당국의 거짓 브리핑을 직격했다.

오신환 원내대표는 20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코미디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군 당국이 경계에는 문제가 없었고 거짓브리핑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려 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계에만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라 양심에도 큰 구멍이 뚫린 것”이라며 “거짓브리핑을 반복하며 국민을 속인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범죄행위”라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오전 650, 삼척항 방파제에 북한 주민들이 타고 온 목선이 정박해 있다.

 

남북군사합의, 주적 사라진 軍…“안보역량 무력화”

실제로 동해는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40km(남북 각각)까지 완충수역으로 설정돼 있다. 이에 따라 완충수역에서는 포병·함포 사격과 해상 기동 훈련을 중지했다.

군 당국은 “해상초계작전 등 경계 활동엔 영향이 없다”며 주장하고 있지만,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뉴데일리>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남북군사합의를 맺으면서 이제 우리 군은 장님에 귀머거리에다 손발까지 못 쓰게 된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유 원장은 “그동안 군사분계선이 뚫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닌 현실에서 대북 감시망을 보강하는 게 정상임에도 문재인 정부는 ‘평화’라는 미명 아래 서둘러서 남북군사합의를 채택함으로써 우리 안보역량을 무력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와 같이 각계에서 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20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이번을 계기로 군의 경계작전 실태를 꼼꼼하게 점검해 책임져야 할 관련자들에 대해선 엄중하게 문책하겠다”며 “사건 처리과정에서 허위보고나 은폐행위가 있었다면 철저히 조사해 법과 규정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고 전했다.

다만, 정 장관이 사과문에서 밝혔던 것처럼 관련자 문책과 엄정 조치를 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지는 의문이다.

‘2018 국방백서’에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했고, 접경지대 GP 해체와 한미연합군사훈련 축소, 소형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판 ‘이스칸데르’ 발사에도 ‘불상 발사체’라고 주장하는 문재인 정부다.

한반도를 향한 북한의 총구는 그대로인데도 북한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행동은 알아서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 평화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 위함이라지만 김정은 눈치 보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반대하는 국민은 드물 것이다. 아울러 전쟁을 바라는 국민은 더욱 드물 것이다.

‘김정은 수석대변인’ 소릴 들어가며 눈치 보기에 급급해 대한민국 군 전력을 무력화 시킬게 아니라, 대화국면을 유지하면서도 국가안보 태세는 굳건히 하는 게 진정한 평화를 위한 지름길이지 않을까.

우리 군의 해상경계에 비상벨을 울린 이번 북한 목선의 남하는 주적이 사라져 국가안보의 목적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대한민국 군의 현주소일 것이다. 어쩌면 9·19 남북군사합의로 인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9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신교근 기자 liberty1123@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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