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1조 깎아주겠다” 파격 제안에도 현산 “12주 재실사”
항공업 불황에 금호·아시아나 대한 깊은 불신으로 난항
채권단-현산 끝내 입장 좁히지 못하고 무산 수순 밟을 듯
이르면 다음주 계약해지 통보…아시아나, 채권단 관리체제로
2500억 계약금 놓고 서로에 책임 묻는 소송전 이어질 듯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아시아나항공과의 인수합병(M&A) 성사를 위해서는 12주 재실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합병이 무산 수순을 밟으면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관리 체제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현산은 전날 아시아나 주채권단인 KDB산업은행(산은)에 이메일을 보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정몽규 현산 회장에 이날까지 인수 의지를 밝힐 것을 요구했었다.

 

현산은 인수의지를 변함이 없다고 밝혔지만 12주간의 재실사를 다시 한번 요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계약 당시와 달리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앞서 이동걸 산은 회장과 정몽규 현산 회장은 지난 26일 전격 회동했다. 협상 조건을 놓고 최종 담판을 지으려 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정 회장에게 현산의 인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방안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채권단과 현산이 각각 15000억원씩, 3억원을 공동 투자하는 방안,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영구채와 전환사채를 자본으로 인정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줄어들고 25000억원에 달하는 인수가는 15000억원으로 줄어든다. 이에 대해 산은은 협의의 가능성만을 전달했다며 부인했다.

 

현산은 미래에셋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이후 12월에 아시아나 대주주인 금호산업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구주 30.77%3228억원에 인수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21772억원 규모의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협상의 변수가 됐다. 국경 폐쇄로 항공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아시아나항공도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결국 채권단으로부터 올해 4월 운영자금 17000억원을 긴급 수혈받았다.

 

이에 현산은 계약 당시와 달리진 상황을 들어 유상증자 참여를 연기했다. 특히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에 대한 현산의 불신은 깊었다.

 

현산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계약 체결 당시와 비교해 2019년말 기준 28000억원의 부채가 추가로 인식되고, 17000억원 추가 차입으로 부채가 무려 45000억원 증가됐다. 부채비율은 올 1분기말 2019년 반기말 대비 16126% 급증했고, 자본총계 또한 1772억원 감소했다. 당기순손실도 1분기 말 8000억원으로 늘어났다. 17000억원 추가 차입과 차입금의 영구전환사채 전환, 부실계열사에 대한 1400억원 지원 등이 현산과 동의 없이 진행됐다고 문제삼았다.

 

그러나 매우 제한된 자료만 제공하는 등 아시아나항공이 실사기간 동안 불성실했으며, 에어부산 등 자회사를 통매각하는 데 7주의 실사기간을 충분하지 않다며 12주 재실사를 요구해왔다.

 

현산이 4월 초부터는 소통을 급격히 줄인 것도 이같은 불신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수 의지가 있다고 밝힌 것과 달리 보도자료와 공문, 내용증명으로만 소통했다.

 

채권단은 현산에 인수 의사를 명확히 하라고 요구하며 계약 해제를 수차례 거론했다. 러시아에서의 기업결합심사가 마무리된 7월 이후에는 현산에 계약 이행을 강하게 요구했다. 714일 금호산업은 현산 측에 인수 거래를 마무리하자는 내용 증명을 발송했으나 현산은 3개월의 재실사 기간을 추가로 요구했다. 이어 29일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더 이상의 기간 연장은 불가하다며 812일까지 계약 이행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다시 보냈다. 현산은 선행조건 충족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당사의 재실사 요구를 묵살했다8월 중 재실사를 재차 촉구했다.

 

8월 초 이 회장이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플랜B’를 언급하면서 현산 측에 계약 해제의 책임이 있다고 못박은 뒤에 비로소 산은과 현산은 대면 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이 회장과 정 회장이 지난 26일 전격 회동하며 협상의 불씨를 되살리는 듯 했지만 아시아나 인수는 끝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와 관련, 산은 측은 현산 쪽 재실사 요구 메일이 온 사실은 공식적으로 확인이 안됐다고 밝혔다.

 

다만 산은이 재실사는 없다고 못박아 왔던 만큼, 현산의 재실사 요구가 있었다면 사실상 협상 무산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정부와 채권단과의 협의를 거쳐 이르면 주중 계약해지 통보를 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다음주 초로 예상되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이후 계약해지 통보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산은은 인수가 무산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을 채권단 관리 체제에 두고 2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이 투입해 경영 정상화를 꾀한 뒤 재매각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행보증금 반환과 관련한 소송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현산은 인수대금의 10%인 2500억원을 이행보증금으로 냈는데 반환을 놓고 서로에 계약 무산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양 측이 거래종결 지연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미루면서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밝혀온 것도 계약 무산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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