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타격 속 총수 공백 위기…반도체 투자 등 ‘급제동’ 우려
경제계 “투자하래 놓고 돌아온 건 구속영장, 기업 옥죈다” 비판
학계 일각 “‘경영권 승계’ 수사 이슈, 주요 그룹사로 번질 수 있어”

삼성 여론전 움직임에 구속영장으로 응수한 검찰

 

검찰이 4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변경 건으로 촉발된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고의로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고 삼성물산의 가치를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이 지주회사인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검찰 소환조사에서 보고를 받거나 지시한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삼성 측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변경은 바이오산업의 성장 가능성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며 인위적으로 기업 가치를 조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해왔다. 하지만 검찰은 최종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이 보고받지 않았을 리 없다고 결론지었다.

 

삼성 내부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앞서 기소 타당성을 검찰이 아닌 외부 전문가에게 판단받고 싶다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을 낸 만큼, 수사심의위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문제가 없다는 법적 판단이 내려진 데다 검찰이 분식회계에서 경영 승계권 의혹으로 혐의를 바꿔가며 장기간 수사를 벌이는 데 대한 우려가 강해진 것도 여론전에 승산을 걸어볼만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기소가 전제된다는 점에서 수사심의위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고 삼성의 전략이 빗나갔다. 수사심의위 제도를 도입한 이후 위원회 소집 요청을 받은 상황에서 수사팀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검찰이 삼성의 여론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스스로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기소독점주의폐해를 막기 위해 자신들이 도입한 수사심의위 제도를 스스로 유명무실하게 만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허를 찔린 삼성은 그룹 공식 입장을 자제했다. 대신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의 입을 빌려 정당한 권리를 무력화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총수 공백' 악몽에 삼성 '전전긍긍'...재벌개혁 겨냥한 도미노 수사우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미·중 무역갈등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때에 삼성이 총수의 공백이라는 위기에 놓이면서 경제계의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지난 493개월 만의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또 올해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때 총수의 책임있는 의사결정이 미뤄진다면 사업을 탄력적으로 대응하기는 커녕, 공격적 투자를 통해 고용을 촉진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킬 방안도 요원하다. 경기 회복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이 부회장은 2018년 경영 복귀 이후 현장 경영을 강화하며 위기 극복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해 일본정부가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자 직접 현장에 달려가 대체수입 판로를 확보했다. 코로나가 터진 뒤에는 가동이 중단된 생산현장을 찾아가 직원들을 격려했고, 글로벌그룹 리더 중 처음으로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찾아 지방정부와 협력방안을 논의했다.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고 과감한 투자를 결단하기도 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 부회장을 만나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논의한 데 이어,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증설 등 18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투자를 단행했다.

 

경제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산적한 현안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도주의 우려가 없는데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기업 옥죄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10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 검찰이 꼬투리 잡기 식으로 수사를 해서야 기업인의 경영의지를 꺾으면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재벌개혁의 드라이브를 강하게 건 만큼, 법리보다 정략적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를 막자는 게 이번 사안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삼성이 이 부회장만의 회사냐, 기업이 성과를 내야 세수가 늘고 경제도 활력이 도는 건데 기업을 흔들어 글로벌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으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꼴이 됐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향후 도미노 수사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경영권 승계를 비롯해 그룹 지배구조 개편 관련 사법리스크가 주요 그룹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경영권 방어라는 프레임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제를 검찰이 집요하게 파고들면 다른 그룹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건은 회계 전문가와 금융감독원도 문제없다고 했는데, 이번 일로 검찰은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추락시켰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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