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장 31명 등 총 214명 선임…3년만에 최대 규모
‘사람이 자산’ 성과주의 입각, 미래 인재 등용
연차·성별·나이 파괴…파격 발탁도 역대 최대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뉴삼성’ 밑그림이 그러졌다. 도전과 혁신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국과는 대중국 견제, 중국과는 사드 보복의 여파가, 일본과는 강제 징용 배상 문제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이어졌다. 더군다나 이 부회장 자신도 사법리스크에 갇혀 운신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3분기 영업이익 12조원을 돌파하며 깜짝 실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가 경영 불확실성을 정면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초격차, 구체적으론 ‘사람’이었다. 때문에 이 부회장은 ‘도전’과 ‘혁신’을 강조하면서 올해 상반기에만 20차례가 넘는 현장경영을 강행했다. 스마트폰과 반도체, 생활가전은 경영진과 직접 만나 주요 현안과 중장기 전략을 논의했다. 자신의 생일날에도 이 부회장은 생활가전사업부를 찾았다. 지난 9월에는 판매 최천선에 있는 삼성디지털프라자를 찾아가 프리미엄 가전을 체험하고 판매사원으로부터 고객 반응을 꼼꼼하게 확인하기도 했다. 당시 땀에 흠뻑 젖은 와이셔츠 차림의 이 부회장 사진이 공개돼 화제가 됐었다. 오너의 동정과 관련된 자료사진을 제공할 때, 기업 홍보팀은 ‘때깔이 좋은 사진’을 고른다. 그런데도 젖은 와이셔츠 차림이 노출될 정도로 이 부회장의 현장 경영이 숨가빴다는 반증이다. 실제 이날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세트부문 사장단과 전략 회의를 가지자 마자 삼성디지털프라자를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4일 삼성전자는 대내외 위기 속에서도 역대급 실적을 만들어 낸 직원들에 승진으로 보상했다. 개개인의 능력 제고과 건강한 경쟁 유도를 함께 고려한 인사였다. 나아가 나이와 연차, 성별에 관계없이 능력있는 인재를 적극 등용해 뉴삼성을 위한 미래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4일 삼성전자 정기 임원 인사를 살펴보면, 부사장 31명, 전무 55명, 상무 111명 등 총 214명에 달한다. 2018년도(221명) 정기 임원인사 이후 3년만의 최대 인원이다. 지난 2일 사장단 인사는 교체보다 유임에 무게가 쏠렸던 것과 대비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에 따른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도 수요에 대한 적기 대응과 운영 효율화를 통해 지난해 대비 실적이 크게 개선된 점을 감안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앞서 사장단 인사에서는 김기남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과 김현석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 고동진 IT·모바일(IM)부문 사장 등 대표이사 3인 체제를 유지하고, 승진 3명, 위촉 업무 변경 2명 등 총 5명의 인사가 이뤄졌다. 

 

인사의 폭은 크지 않았지만, 견조한 실적을 견인한 반도체와 생활가전 출신들을 승진시켰다. ‘비스포크 주역’ 이재승 소비자가전(CE) 부문 부사장이 삼성전자 최초로 생활가전 출신의 사장 승진자가 됐다. D램 전문가 이정배 부사장과 반도체 공정·제조 전문가 최시영 부사장은 각각 메모리사업부과 파운드리 사업부의 수장으로 낙점됐다.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꾀한 셈이다. 

 

메모리사업부장이었던 진교영 사장은 종합기술원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파운드리사업부장이던 정은승 사장은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에 앉았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물들을 연구개발쪽으로 이동시켜 반도체 공정개발을 가속화해 초격차를 확대하고, 차세대 핵심기술 고도화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성과주의에 입각, 세대교체를 통한 혁신, 전문가 발탁에 따른 초격차 강화 기조는 임원 인사에서도 이어졌다. 

▲ 삼성전자 부사장 승진자들. (맨 위 왼쪽부터) 고승환, 김학상, 윤장현, 이강협, 이기수, 이준희, 최방섭, 최승범, 스틴지아노 부사장
 

경영성과와 탁월한 리더십을 겸비한 핵심인재 31명을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지난해(14명)보다 2배 이상 많은 인원이다. 스마트폰·TV·가전 부문에서는 17명,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서는 14명을 승진시켰다. 연령대는 50대를 넘기지 않아 역동성을 더했다. 

 

고승환 VD사업부 구매팀장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패널 가격 예측 시스템을 도입해 코로나19로 인한 국가별 부품 공급 운영의 불확실성 해소한 점이 인정받아 부사장으로 등용됐다. 이강협 생활가전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은 가전 영업·마케팅 전문가로 비스포크 등 고객 맞춤형 혁신 제품 라인업 강화와 판매 확대를 통해 가전 연간 매출 신기록 달성에 기여한 공로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김학상 무선사업부 NC개발팀장은 무선 상품화 하드웨어 전문가로 갤럭시탭·갤럭시북 시리즈 개발을 주도해 태블릿 PC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고 견고한 수익을 창출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아 부사장에 올라섰다. 최승범 삼성리서치 기술전략팀장은 기술전략 전문가로 AI(인공지능), 로봇, 차세대 통신의 기술 전략과 로드맵을 수립하는 등 미래 사업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점을, 한인택 종합기술원 재료연구센터장은 나노재료 및 소자개발 전문성을 토대로 디스플레이 퀀텀닷(QD) 소재, 차세대 메모리용 High-K 물질 등 핵심 소재개발을 주도한 점을 인정받아 부사장 직함을 받았다. 

 

특히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연령이나 연차 등과 상관없이 성과가 우수하고 성장 잠재력이 있는 인재를 승진시키는 발탁인사가 두드러졌다. 발탁승진은 2017년도 인사엣는 8명이었으나, 2018년도엔 13명, 2019년도 18명, 2020년도 24명으로 꾸준히 늘었고 이번엔 25명에 달했다. 

 

이기수 생활가전사업부 개발팀장은 1년, 이준희 네트워크사업부 선행개발그룹장은 8개월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중 이기수 부사장은 가전 개발·상품전략 전문가로 비스포크 냉장고, 그랑데AI 세탁기 등 혁신 가전 기획과 개발을 주도했던 점을 고려하면, 스마트폰과 반도체에 밀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생활가전부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의 규모로 보나 IT 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고 했던 이 부회장의 말처럼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젊은 인재 기용 또한 활발했다. 특히 70년대생 임원 발탁이 늘어났다. 박성제 VD사업부 TV개발랩 상무와 김민우 무선사업부 영업혁신그룹 상무, 이윤경 삼성리서치 데이터분석랩 상무, 이윤수 삼성리서치 AI 서비스랩장 상무, 노강호 메모리사업부 소프트웨어개발팀 상무, 최현호 종합기술원 유기소재랩 상무 등은 모두 70년대생이다. 이윤경 상무와 최현호 상무로 만 41세 나이로 가장 젊었다. 

▲ 삼성전자 부사장들 (맨 위 왼쪽부터) 윤태양, 이석준, 이종열, 한인택, 황기현 부사장
 

조직 혁신과 지속가능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인과 여성에 대한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이 지속됐다. 외국인·여성 신규 임원은 지난해보다 1명 늘어난 10명이다. 미국과 네덜란드, 러시아, 일본 등에서 코로나19에도 매출 확대와 수익성 제고에 기여한 인물들이 임원으로 기용됐다. 드미트리 SERC법인 CE B2C팀장은 러시아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점유율 61%를 달성하고 라이프스타일 가전 매출을 지속해서 확대한 점을 인정받아 상무로 승진했다. 미국 CE 영업 전문가인 스틴지아노 SEA법인 CE 비즈니스장은 미국 CE 매출 지속성장과 수익성을 제고해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또 서비스 기획 전문가인 한상숙 VD사업부 서비스 비즈니스팀 부팀장, 그랑데AI 세탁기 개발을 주도한 유미영 생활가전사업부 소프트웨어개발그룹장 등 각 분야 여성 인재도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소프트웨어 분야 우수 인력 확보에도 힘을 줬다. 소프트웨어 분야 승진자는 10명에서 21명으로 크게 늘었다. 반도체, 폰, AI 등 연구개발 부문 최고 전문가로 펠로우 1명, 마스터 16명을 선임해 최고 기술회사 위상 또한 강화했다. 

 

이건희 회장이 티계한 이후 첫 인사인 만큼, 뉴삼성의 밑그림을 엿볼 수 있었던 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대내외 경영 불확실성에도 흔들림없이 초격차를 확대하고 혁신을 가속화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는 다음주 중 조직개편과 보직인사를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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