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7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제9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뒤쪽으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등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과 2020년 주주총회 주주권 행사를 촉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스페셜경제 = 김은배 기자] 국민연금이 횡령·배임·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가 추락했는데도 개선 의지가 없는 투자기업에 대해 이사해임과 정관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가이드라인을 의결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이 국민연금을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입장이지만, 재계에선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경제의 활력도 잃게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27일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과 범위, 절차 등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횡령·배임·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가 추락했는데도 개선 의지가 없는 투자기업에 대해 이사해임과 정관변경 등의 요구가 가이드라인의 핵심 골자다.

기금위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가이드라인은 국민연금을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국민연금이 불가피하게 주주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자의적으로 결정하지 않도록 원칙과 기준을 투명하게 만들어 주주활동에 대한 시장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박 장관은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주주활동을 충실히 이행하면 우리나라 자본시장도 건강하게 발전해 대외적 신뢰도도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국민연금의 장기수익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연금의 주주활동 목적은 장기수익 및 주주가치 제고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주주 활동 대상을 선정할 때 해당 기업의 산업적 특성과 기업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로 했다”면서 “이사해임 등의 주주제안 자체를 철회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 넣어서 기업을 보호하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정부가 이사해임과 정관변경 등의 요구가 골자인 가이드라인을 의결함에 따라 국민연금은 당장 내년 3월 열리는 민간기업 주주총회에서 가치 훼손 기업에 적극적 주주활동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특히 횡령·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동일 범죄에 대한 변호사 비용 400억원 대납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익편취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 등에 대한 연임 안건이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상정될 확률이 높은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들 기업에 대해 이사직 상실을 내용으로 한 정관 변경 주주제안을 하고 독립·공익적 사외이사를 추천할 것을 기금위에 요구하고 있다.

또한 불공정 합병 비율 논란 속에 2015년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삼성물산과 뇌물 공여 혐의로 벌금 및 손해배상 결정이 내려진 삼성중공업과 관련해선 주주대표소송과 손해배상소송 등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단체 “경영개입…경영 활동 위축”

경제단체들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보건복지부가 경영계의 거듭된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 경영개입 목적의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 도입을 의결했다”며 “실물경제가 부진한 상황인 데다 국가적 시급성이 없는 사안임에도 무리하게 의결을 강행해 극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독립성이 취약한 현행 기금위 구조를 감안할 때 앞으로 정부는 물론 노동계와 시민단체도 국민연금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민간기업의 정관 변경, 이사 선·해임 등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또 “복지부가 가이드라인의 목적이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과 주주가치 제고에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주주가치는 시장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라며 “특정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경영개입은 그 자체로 시장에 부정적 시그널을 줄 가능성이 크고 기업 경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개연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경영계는 공적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주 수입 원천인 기업을 압박하는 데 앞장서게 된 점에 참담함을 느낀다”며 “국민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따라 경영 중립적 투자 결정을 통한 수익률 제고에 충실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날 의결된 가이드라인이 내용과 절차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며 비판했다.

지난달 29일 기금운용위 개최 당시 경제계가 국민연금이 보유 주식을 활용해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에 개입하는 것에 강력한 우려를 표명하고, 주주권 행사 강화에 앞서 기금운용위 독립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이날 원안에 가까운 수정안을 통과시켰다는 게 전경련의 지적이다.

전경련은 “기금조성의 핵심 주체인 기업 의견을 묵살하는 가이드라인 내용도 문제지만 기금운용위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강행 절차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민연금의 기업경영 개입과 지배구조 간섭이 늘면 신산업 진출과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할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결국 우리 경제의 활력도 잃게 될 것”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은배 기자 silvership@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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