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병이 뭐길래?’…하이트진로 vs 롯데주류 공병 놓고 ‘장외전’

 

[스페셜경제=김다정·선다혜 기자]국내 소주 시장에서 부동의 1·2위를 다투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가 이번에는 소주시장이 아닌 장외에서 맞붙었다.

사건은 지난 4월 하이트진로가 ‘진로 이즈 백’을 재출시하면서 시작됐다. 이 제품은 ‘초록색 병’을 기본으로 하는 기존 소주들과 다르게 ‘하늘색’ 병(이형병)을 사용하면서 양 사의 갈등이 불거졌다.

롯데주류가 하이트진로의 진로 소주병이 기존 소주병과 색깔과 모양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거한 공병을 돌려주지 않는 것이다.


반면 하이트진로 입장에서는 소주 제품의 특성상 병을 재사용 하지 않으면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없기 때문에 당연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롯데주류가 자사 공장에 200만개의 진로 공병을 쌓아 놓고 돌려주지 않으면서 양측의 갈등의 골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양사로 인해 불거진 진로 공병의 재활용 문제는 하이트진로뿐 아니라 이형병을 사용하고 있는 무학과 대선주조까지 번질 우려가 있어 업계 전반에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더욱이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롯데주류의 ‘청하’도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소주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의 ‘이형병 전쟁’의 진실에 대해 짚어보기로 했다.

 

하이트진로 “우리는 청하 병 주잖아…200만개 진로 공병 돌려달라”
롯데주류 “제도 자체 훼손…너네 때문에 우리도 제품 제조에 차질”

 

지난 4월 하이트진로는 ‘진로 이즈 백’을 재출시했다. 최근 유통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뉴트로(New+Retro)’ 트렌드를 반영하면서 소주 브랜드의 정통성을 계승하기 위함이었다.

 

하이트진로의 전략은 먹혀들었다. 진로는 출시 72일 만에 1104만병 판매를 돌파하고 지금까지도 젊은 소비자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하이트진로는 진로의 인기몰이에도 불구하고 최근 제품 생산에 어려움을 빚고 있다.

 

경쟁사인 롯데주류가 주류회사 간 맺은 공용병 사용자율협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수거한 진로 공병을 하이트진로에 돌려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롯데주류 소주 생산 공장에 쌓여있는 진로 공병은 약 200만병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판매량 증가에 힘입어 제품 생산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하이트진로 입장에서는 공병을 돌려받지 못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품 출고원가에서 새로운 병이 차지하는 비율이 30% 가량 되기 때문에 병을 재사용하지 않으면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소주병은 7~8회까지 재활용이 가능하다. 1985년부터 공병보증금 반환제도를 통해 소비자들이 소주병을 소매점으로 반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반환된 공병은 주류업체 공장으로 옮겨져 재활용을 위한 공정을 절차를 거친다.

이에 하이트진로·롯데주류를 포함한 소주 업체들은 지난 2009년 소주병을 공용화해 공병 재사용률을 높이고 빈 병 수거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소주는 제조사가 달라도 소주병이 녹색의 동일한 크기·디자인으로 제작되고 있다. 일반적인 병 소주는 중량 290g, 병지름 65㎜, 높이 215㎜, 병색깔은 초록빛인 ‘표준 용기’를 사용한다.

‘환경’ 내세운 롯데주류…“제도 자체 훼손시킬 것”

그러나 이번 진로 병의 경우 기존 소주병과 크기와 색깔이 다른 이형병을 사용했다는 점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40년 만에 재출시 된 진로의 경우 과거와 같이 하늘색에 목이 짧은 병을 채택했다.

실제로 이 제품을 출시 당시 자연순환연대 등 환경단체들로부터 기존 소주병과 크기와 색깔이 달라지면서 재활용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현재 롯데주류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하이트진로가 공용 표준용기를 사용하기로 협의한 상황에서 이형병의 대량생산을 이어가면 공병보증금 반환제도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롯데주류 측은 <스페셜경제>의 통화에서 “소주 공용병은 10개 주류사가 환경을 위해서 협약을 맺어 사용하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이형병이 ‘진로이즈백’이 나오면서 주류사들이 모여 만든 협약이 유명무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인해 롯데주류는 자사에서 나온 ‘순하리’나 ‘대장부21’를 출시할 당시에도 이형병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 소주병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특히 순하리 같은 경우는 주세법상 기타주류였기 때문에 소주도 아니고, 과즙이 포함된 낮은 도수의 알콜이었기 때문에 다른 병을 쓸 수도 있었다”며 “하지만 환경을 위한다는 대승적인 차원을 따르기 위해 일반 공용병을 사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이형병의 경우 일일이 롯데주류로 들어온 공병을 선별해 박스에 담아 돌려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건비·물류비 등이 상당히 소요된다는 불만도 쏟아냈다.

하이트진로 “진로병도 재사용 가능…그럼 청하는?”

이처럼 롯데주류는 진로 병의 반환 거부 이유를 ‘환경’ 문제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하이트진로 측은 경쟁사의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한라산을 비롯한 다른 이형병 제품들도 모두 재사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진로도 동일한 재사용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롯데주류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 빈병의 선별과 반환의무를 지키지 않아 공장에서 방치되고 훼손되는 것이 더 환경문제를 야기한다는 주장이다.

해당 시행규칙에 따르면 다른 빈용기 재사용 생산자의 제품의 빈용기가 회수된 경우에는 이를 사용하거나 파쇄하지 말고 해당 빈용기 재사용 생산자에게 돌려줄 것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이를 거기더라도 처벌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 하이트진로 측은 <스페셜경제>와의 취재에서 “진로 병은 기존 표준 용기와 동일하게 재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환경을 생각한다면 공병을 돌려주는 게 맞다”며 “오히려 롯데주류가 수거한 모든 진로병을 무작위로 방치·훼손해 재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롯데주류가 주장하고 있는 공병보증금 반환제도 훼손 우려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해당 협약은 강제성이 없이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주류업계에서는 브랜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병의 디자인을 차별화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실제로 2009년 공용화 협약 이후 한라산·금복주·보해 등 다수의 소주 업체들은 현재까지 이형병을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올해 진로가 재출시되기 전까지 이형병 부문에서 가장 많은 판매 비중을 차지한 제품은 롯데주류의 ‘청하’다.

이에 그동안 하이트진로 측은 소주와 동일한 유통경로로 재사용되는 타사의 이형병들의 매월 선별해 반환해 전달하고 있으며, 롯데주류가 생산하는 청하의 빈병도 10년 동안 돌려주고 있다. 올해만 매달 청하 100만병, 약 800~900만병을 돌려줬다는 것이다.

이어 하이트진로 측은 “진로 공병에 대한 비용의 경우 이미 롯데주류와 청하 수거 비용 등에 대한 지불 협약을 맺을 당시와 동일한 금액으로 공병을 수거해 가겠다고 제안했지만 롯데주류 측은 공병을 단 한 개도 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환경은 핑계”…진짜 의도는 경쟁사 ‘견제’에 있다?

이번 롯데주류의 진로 공병 반환 거부는 정부로부터 하이트진로가 업계 합의로 이뤄진 소주병 공용화 자율규약을 깬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일반 소주병과 달리 진로의 경우 일일이 선별작업을 해야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인건비 등 투입비용이 기존보다 더 많이 소요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환경부의 정확한 판단을 요구하기 위해 롯데주류가 반환 대신 적재를 하게 된 의도로 풀이된다.

때문에 롯데주류 측은 “우리는 환경부가 이형병에 대해서 내리는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형병 문제를 공론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환경부가 환경적 보호차원에서 빈병 재사용을 적극 권하고 있는 상황에서 롯데주류의 주장은 다소 설득력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오히려 업계에서는 최근 일본 이슈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롯데주류가 경쟁사를 상대로 흠집내기에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회의적인 목소리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더욱이 자사제품인 청하는 협약이 이뤄진 주종이 아니라며 선을 긋는 동시에 하이트진로를 제외한 다른 업체에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 않아 이런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국내 소주 시장은 하이트진로의 ‘참이슬’과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이 양분하고 있다. 이 두 브랜드의 국내 시장 합산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이들 회사는 서로를 제외하면 딱히 경쟁상대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몇 달 사이 롯데주류는 롯데 그룹이 일본 불매운동과 연관되면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롯데주류의 소주 ‘처음처럼’, 맥주 ‘클라우드’ 등의 제품이 일본 불매운동 제품 리스트에 올랐다.

롯데주류는 최근 적자 규모를 꾸준히 줄여가며 올해 2분기 혹은 3분기에 흑자 전환 가능성도 점쳐졌으나, 예기치 못한 이슈에 휘말리면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하이트진로는 롯데주류의 반사이익을 누리며 올해 출시한 맥주 ‘테라’와 복고소주 ‘진로 이즈 백’의 연이은 기록 갱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이후 처음처럼의 매출은 전월 대비 최대 8% 넘게 하락하는 반면 참이슬과 진로는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진로는 지난 4월 출시 첫 주 대비 6월은 4배, 7월은 8배 이상 판매량이 증가했다. 현재 4월 대비 6배 이상 증가한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 대해서 롯데주류 측은 “최근 일본발 이슈로 인해서 롯데가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건 맞다. 그래서 히트를 치고 있는 진로 이즈백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해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의도였다면 우리가 잘못하는 것”이라며 “안그래도 이슈에 둘러싸여 잇는데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제품을 이렇게 대놓고 스크래치내면 더 문제가 될 텐데 그런 목적은 절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기존에 출시됐던 이형병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지방주류사들이 만든 제품의 경우는 보통 지방에서 많이 판매되기 때문에 우리 회사로 들어오는 물량은 굉장히 소수였기 때문”이라며 “예컨대 한 달에 소주에 만병씩 오간다고 하면, 그 중에 이형병은 백병에 불과했고, 이를 가지고 문제를 삼기는 애매했다”고 설명했다.

즉, 과거에 존재했던 이형병의 경우는 물량이 많지 않았고, 진로 이즈백은 물량이 많았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롯데주류의 주장은 형평성에 논란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마케팅 목적으로 ‘암묵적으로 허용됐던 이형병’이 업계 1위인 하이트 진로에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회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눈치 보는 지역 소주업체…불똥 튈까 ‘전전긍긍’

이형병을 둘러싼 업계 1·2위 업체 간의 갈등이 고조되자 불안감은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현재는 롯데주류가 하이트진로만은 문제로 삼고 있지만 향후 문제가 공론화 되면 이형병을 사용하는 다른 업체들까지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지역 소주인 한라산은 오래전부터 투명병으로 유통되는 대표적인 제품이다. 지난해에는 지역업체 금복주가 2013년 출시된 ‘참아일랜드 독도소주’를 투병한 병으로 리뉴얼해 출시했다. 무학의 ‘좋은데이 1929’와 대선주조의 ‘고급소주’도 투명색병 열풍에 가세했다.
 

이들 업체들은 하이트진로와 달리 당장 병을 회수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지만, 롯데주류의 이형병 반대에 ‘난색’을 표하며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환경부 산하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주관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롯데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주 업체들은 이형병 사용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소주업체들은 기존 소주 제품만으로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특색있는 모양과 색으로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다. 이형병의 사용 금지는 기업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논란이 커지자 환경부도 지난 4일 주류업계 관계자들을 모아 이형병 관련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환경부는 “용기 디자인·규격 등을 강제화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갈등을 빚은 업체 등이 자발적으로 비용 보전에 대한 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에 따라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 등은 상호합의 할 수 있는 정도의 취급수수료 기준 등을 마련해 재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롯데주류가 앞으로도 타 제조사의 투명병은 가능하지만 주류업체 1위인 하이트진로는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양 측의 이견을 좁히는 데에는 많은 난항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신제품을 출시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업체 간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은 기업의 의무인데 이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롯데주류의 주장은 적절치 못한 것 같다”며 “이형병 사용을 막는다면 결국 눈에 띄지 않는 지역 소주들은 매출 하락으로 아예 문을 닫을 우려가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선택권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다정·선다혜 기자 speconomy@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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