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심의위 불기소 권고 거부할듯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또다시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위기다. 검찰이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 부회장을 기속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풍이 불더라도검찰, 이재용 부회장 불구속 기소로 가닥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이르면 이날 19개월간 이어온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사를 이끌어온 이복현 부장검사와 최재훈 부부장검사가 93일자로 대전지검과 원주지청으로 이동하는 만큼, 그 전에 결론을 내리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뤄졌다고 주장해왔다. 삼성물산의 주가는 떨어뜨리고 제일모직의 주가를 부풀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합병이 이뤄졌으며,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지시하거나 관여했다는 것이다. 반면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변경 모두 적법하게 진행됐으며 시세조종처럼 인위적인 기업 가치 조작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도 검찰 소환 조사에서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후 수사심의위에서 표결 참여위원 13명 중 10명이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하자 검찰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변호사 4, 법학교수 4, 종교인, 언론인, 회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 중에는 삼성 수사를 지지해 온 전문가가 최소 4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장기간 샅샅이 수사했지만 협의 입증을 실패한 것은 물론, 전문가들에게서 수사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이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기소 유예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검찰은 일축했다.

 

결국 검찰은 이 부회장에 대해 불구속 기소로 방향을 잡았다는 게 법조계의 전언이다. 검찰이 혐의를 두는 부분은 자본시장법 위반과 외부감사법 위반이다. 여기에 업무상 배임이 추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등도 불구속 기소키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종전과 달리 이례적으로 수사심의위의 권고에 정면 대치되는 결정을 내림에 따라 표적 수사 논란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통상 수사심의위 권고가 내려진 뒤 1~2주 이내 결정을 내렸던 이전과 달리 검찰은 2달 넘게 침묵했다. 그러면서도 회계와 경영학, 기업지배 전문가 등을 불러 의견을 청취했다. 수사심의위의 권고와 다르게 사실상 보강 수사를 벌인 것으로, 기소를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검찰은 사실 기소 의지를 수차례 드러내왔다. 이 부회장도 2차례 소환했고, 임직원 소환조사도 430여차례나 진행했다. 압수수색도 50차례나 벌였다. 이 부회장이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하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에도 검찰은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법원의 영장 청구 기각 사유를 들어 법적으로 혐의가 인정됐다고 주장해왔다.

 

검찰이 불구속 기소키로 함에 따라 표적수사 논란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기소권 남용을 막고 수사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사심의위를 도입했다. 수사심의위의 권고는 강제성이 없지만, 검찰 개혁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검언 유착 의혹을 제외한 8번의 수사심의위 권고를 모두 따랐다. 하지만 이 부회장 건만 예외적으로 부인할만한 명분이나 여론을 얻지 못했음에도 검찰은 수사심의위 권고를 불복하기로 한 것은 체면치레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이 수사 성과를 내겠다는 일념에서 기소부터 하고 보는관행을 되풀이 해왔는데 이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검찰은 자존심을 버리는 편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며 압도적 다수가 불기소 판단을 했는데도 (검찰이) 스스로 만든 이 제도를 걷어찬다면 자존심이 아니라 아집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이 입맛에 따라 수사심의위 권고 수용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오히려 해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 부회장 수사에 대해 국민의 상식, 법의 판단은 위법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법적 안정성을 해치면서까지 기소를 강행한다면 정치검찰오명이 강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최근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을 국무회의에 통과시키며 기업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삼성을 본보기 삼아 대기업 길들이기, 나아가 재벌 해체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검찰이) 집요하게 몰아가는 모습이 재벌 해체가 목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라며 국제 회계기준에 따르면 기업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라는 원칙이 있고, 기업의 경영권 방어라는 측면도 고려해야 하는데 삼성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기업에도 (흔들기가) 도미노로 번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이재용 초격차 빛보기 시작했건만...” 삼성 장탄식

 

이재용 부회장은 "포스트 코로나의 미래를 선점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코로나 사태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국내외를 누비며 현장을 챙겼다. 삼성전자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날에도 그는 반도체 현장을 찾아가 미래 반도체 기술로 손꼽히는 패키징 기술을 점검했다.

 

특히 위기 속에서도 끊임없는 투자를 통해 근원적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차세대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부회장은 인공지능(AI), 5G(5세대 이동통신), 자동차용 전자부품(전장)와 같은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키우는 데 적극 나섰다. 덕분에 삼성전자는 2분기에만 98000억원, 상반기에는 171000억원을 시설 투자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 지난해 시설투자에 226000억원을 투입했던 것을 고려하면 더욱 공격적인 투자에 단행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반도체에서의 투자는 매우 가파르다. 상반기 투자액의 대부분은 반도체 투자로 147000억원에 달한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가 지난 25일 초미세공정인 2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장 건설을 공식화했고,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문 반도체 설계업체인 엔디비아는 반도체 설계회사 ARM 인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사들에 대항해 이 부회장도 수십조에 이르는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올해 초 화성캠퍼스에 극자외선(EUV) 전용 V1 라인을 준공했다. 지난 5월과 6월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인 평택캠퍼스 2라인에 EUV 공정 기반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착공한 데 이어, 낸드플래시 생산라인도 건립하기로 했다. 9월에는 평택캠퍼스 P3 라인 공장 터 다지기에도 들어간다.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확보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특허정보 분석업체 페이턴트피아(Patentpia)’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AI·빅데이터 기술 관련 반도체 특허공개량은 228건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았다. 특허공개량은 해당 기술을 개발했다고 각 기업들이 공개해놓은 수치로 특허 출원과 유사한 의미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2014년 이후부터 매년 AI 반도체와 관련된 기술 특허를 두자릿수 이상 출원했고, 등록이 완료된 특허도 총 77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도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관련 기술 특허를 총 101건 보유해 IBM(180), 인텔(127), 퀄컴(109)에 이어 외국기업 중에선 가장 많은 관련 특허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SoC(시스템온칩), 영상시스템, 자동차용 등 시스템반도체 전체 특허 등록량에서도 3010건으로 국내 1위를 차지했다.

 

이와 같은 투자를 바탕으로 삼성의 첨단 기술 리더십은 더욱 탄탄해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업계 최초로 EUV 공정을 적용한 3세대 10나노급(1z) LPDDR5 모바일 D램이 생산에 들어간다. 역대 최대 용량과 최고 속도를 동시에 구현한 이 모바일 D램은 역대 최대 개발 난도를 극복하고 미세공정 한계를 돌파해 삼성의 기술력을 재확인시켰다는 평가다. 지난해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공정 양산에 돌입한 6세대 V낸드(낸드플래시)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생산된다.

 

시스템반도체에서의 상승세도 두드러진다. 지난 13일 업계 최초로 7나노 EUV 반도체에 3차원 적층 패키지 기술인 X-Cube(eXtended-Cube)를 적용한 테스트칩 생산에 성공했다. X-cube 기술은 기존 시스템 반도체와 달리 CPU·GPU(그래픽카드)·NPU(신경망처리장치) 등의 역할을 하는 로직 부분과, 자주하는 작업이나 동작을 저장해 빠른 작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S램 부분을 나란히 배열하는 대신 위로 쌓아 올려 칩 면적은 줄이면서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크게 향상시켰다.

 

파운드리는 초미세 공정 개발이 탄력받았다. 올해 2분기 5나노 공정 양산이 시작돼 하반기 고객사를 늘려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할 채비를 갖췄다. 4나노 1·2세대 공정 양산과 개발도 차질없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 GAA(Gate-All-Around) 공정을 적용한 3나노 웨이퍼를 공개하며 3나노 이하 공정 개발의 속도도 올리고 있다. 최근 IBM의 차세대 서버용 POWER 10 프로세서를 수주하며 대형 고객사 확보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검찰의 기소 강행으로 삼성의 경영 시계를 다시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국정농단 특검 파기환송심이 아직 진행되는 가운데 또다른 사법리스크가 더해질 경우,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공백을 불가피하다. 뉴삼성 전략은 물론, 코로나와 같은 돌발상황에서 국내 투자를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한 의사결정도 어려울 수 있다.

 

더욱이 2016년 미국의 전장업체 하만인수, 최근의 IBM 차세대 서버용 프로세서 수주, 승현준 삼성리서치 소장 등 AI석학 영입, 현대자동차와의 미래 모빌리티 협력 모색 등 선제적 투자와 협력에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를 단행했을 때도 이 부회장은 일본에 직접 건너가 대응책을 마련했다. 이 때문에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부재로 인해 삼성의 손실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아직 결과가 나온 게 아니지 않느냐면서도 국정농단 특검 이후 4년이 넘도록 같은 사안으로 기업 경영이 발목잡히는 상황에 대해 갑갑함을 토로하고 있다. 삼성 내부에서는 언제까지 시달려야 하냐’ ‘감옥에 갇힌 기분이라는 볼멘 소리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가 죄인이냐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암작원들도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적층 기술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건희 회장의 선구안과 의지 덕분이었다. 이처럼 오너리더십이란 시장을 선도하고 기업의 혁신적 성장을 만드는 원동력이라며 일본, 미국, 중국 등 세계 각 국이 자국기업을 밀어주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박하다. 홀로 세계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삼성에겐 이 부회장의 결단력이 가장 필요한 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언론들도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리스크가 삼성의 경영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최근 지난 3년간 이 부회장의 법적 문제로 회사는 거의 마비 상태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지적했고, 미국 블룸버그는 이 부회장 없이 중요한 의사결정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 부회장에 대한 사법리스크로 삼성 실적에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니케이 또한 전문 경영인 체제와 비교해 오너 체제가 과감한 투자나 인수·합병(M&A)에 더 유리하다고 분석하면서 삼성의 사법 리스크가 중장기 전략 수립 지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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