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코로나19 확산세에도 EUV 확보 위해 유럽행
시스템반도체 1위 견인차는 파운드리‥초미세 공정 개발 속도
5나노 공정 앞선 TSMC‥2나노 공장 구축 계획 등 견제 나서
3나노 일정 당긴 삼성전자‥파운드리 점유율 상승 노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가운데)이 지난달 13일(현지시각) 네덜란드 ASML 공장을 찾아 관계자와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와 함께 EUV 장비 생산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우리 김 부회장님께 여쭤봐주시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14일 유럽 출장 귀국길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로부터 ‘ASML과의 추가 공급 논의가 긍정적으로 진행된 게 맞느냐’는 질문을 받고서다. 그는 출장에 동행했던 김기남 삼성전자 DS 부문장(부회장)을 가리키며 ”여쭤봐주시라“고 답했다. 

 

지난 5월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을 다녀온 뒤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과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이 부회장이 유럽에 머물렀던 시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평균 10만명 이상 발생할 정도로 재확산 기세가 무서웠다. 이 부회장의 출장이 이뤄진 10일(현지시각) 네덜란드는 6499명, 스위스는 1487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며 3월 이후 최다 확진자가 발생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음에도 이 부회장이 직접 네덜란드 ASML 본사를 다녀온 것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보다 많이 확보해 대만 TSMC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따라 잡는다’ 칼 가는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TSMC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초미세 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저전력 고성능 제품이 늘어나면서 모바일 SoC(시스템온칩), HPC(고사양 컴퓨터), 네트워크 등 응용처가 다양해지면서 파운드리 시장은 성장세다. 종합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로선 시스템반도체 설계부터 양산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게 목표고, 더욱이 자사의 제조 노하우를 십분 살릴 수 있는 파운드리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 견인차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기술력 강화에 집중해왔다. 지난해 EUV 공정을 도입한 뒤 초미세 공정 기술 개발을 속도를 높인 결과, TSMC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5나노 공정 양산에 성공했다. 현재 5나노 이하의 미세 공정이 가능한 곳은 삼성전자와 TSMC 뿐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목표와 달리 TSMC와의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모양새다. 2분기 좁혀졌던 간격은 3분기 다시 벌어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3.9%, 삼성전자가 17.4%로 추정된다. 두 회사의 격차는 36.5%, 전분기보다 4%p 가까이 늘었다. 

 

다만 점유율과 별개로 삼성전자는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며 파운드리에서 위상을 다지고 있다. 최근 IBM의 차세대 서버용 CPU,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퀄컴의 차세대 스마트폰AP 등을 잇따라 수주했다. 그 결과 3분기 파운드리는 분기 최대 매출을 올렸다. 

 

TSMC는 ‘2년 뒤 일정까지 꽉 차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생산을 더 이상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대형 고객사는 안정적 수급을 위해 공급처를 다변화하는데 삼성전자에게는 추가 수주의 기회인 셈이다. 실제 삼성전자 관계자는 블룸버그 통신에 “지난 한 해 동안 파운드리 고객사를 30% 늘렸다”고 말했다. 

 

‘쫓아오면 더 달아난다’ TSMC의 견제

 

TSMC은 퀄컴, AMD 등의 5나노 제품을 생산하며 삼성전자보다 미세공정 개발에서 한 발 앞섰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조용한 추격에 TSMC는 견제에 들어갔다. 

 

TSMC는 매년 EUV 노광장비 대거 확보하며 파운드리 1위 수성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ASML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22.6%에서 지난해 39.7%로 판매 비중이 증가했다. 내년까지 EUV 노광장비 50대를 더 구매한다. 삼성전자의 추격을 따돌리겠다는 의자의 발로다. 

 

최근 들어서는 차기 제품 양산 시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견제가 더욱 노골화됐다. 지난 8월 대만 타이난시 근교에 28조원을 투입하는 3나노 공정 파운드리 공장을 신설하고, 2022년 하반기부터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밝혔다. 내년엔 대만 신주 지역에 2나노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하고 곧이어 인근 부지에 2나노 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이에 따라 설비 투자도 적극적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각) 이사회를 통해 대만에 151억달러(약 16조7600억원)를 대만에, 35억달러(3조8900억원)를 미국 애리조나에 투입해 5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개발과 양산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3나노는 먼저’ 삼성전자의 선전포고

 

삼성전자는 지난해 상반기 5나노 공정 개발을 완료하고 2분기 4나노 1·2세대 공정 양산 및 개발을 진행 중이다. 현재까진 TSMC와의 기술 경쟁에서 추격자의 입장이었지만, 삼성전자는 3나노 양산 시점을 공식적으로 밝히며 선전포고를 했다. 

 

17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박재홍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부사장은 최근 협력사 개발자들과 기술 동향을 공유하는 행사에서 “2022년까지 3나노(㎚) 양산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3나노 양산 시점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부사장은 “경쟁력 있는 시스템온칩(SoC) 개발을 위해 시장 동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설계 장벽을 낮추기 위해 최첨단 프로세스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혁신할 것”이라며 “각 파트너사들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우리의 파운드리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반도체는 웨이퍼 위에 광선으로 쏘아 미세회로를 반복해서 그려 넣는다. 이때 회로는 머리카락의 머리카락의 10억분의 1에 불과한 나노미터로 촘촘하게 새긴다. 회로가 가늘수록 성능이 높아지고 용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나노의 숫자가 적어질수록 더 세밀한 공정을 한다는 뜻이다. 3나노의 경우, 소비전력이 50% 감소하고 칩면적은 35% 줄어든다. 반면 성능은 30% 가량 올라간다. 

 

삼성전자의 3나노 양산 계획은 자사의 기술력을 강조하고 고객사를 보다 늘리기 위한 ‘러브콜’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3나노 공정 개발에 돌입한 상태다. 이와 관련, GAA(Gate-All-Around) 공정을 적용한 3나노 웨이퍼를 공개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TSMC보다 앞서 3나노 양산을 성공한다면 파운드리 점유율을 늘릴 수 있게 된다. 다만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시스템을 모두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TSMC만큼 파운드리에 집중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 3분기까지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비투자에 21조2706억원을 쏟아부었는데, 메모리반도체 비중의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