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시계에 다시금 그늘이 드러워졌다. 이건희 회장이 타계한 지 약 보름, 이 부회장은 뉴삼성의 밑그림을 구체화하고 중장기 전략을 쨔아 할 때 2개의 재판을 동시에 소화하게 됐기 때문이다.

 

내년 초 사법리스크의 위험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를 속단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날인 9일 서울고법 형사1(부장판사 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심리로 재개된 5차 공판에서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적 운영을 평가할 외부 전문심리위원 지정을 놓고 특검이 날 선 공방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날 재판부는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특검과 이 부회장 변오인 측이 각각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홍순탁 회계사를 추천했다. 이들은 이달 중으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 여부를 평가하게 되는데, 재판부를 이를 바탕으로 이 부회장의 양형을 결정짓기로 했다.

 

그러나 특검은 중립성을 문제삼으며 반대 의견 개진을 위한 진술을 요청할 정도로 강하게 반발했다. 재판부가 특검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잠시 휴정을 선언할 만큼, 특검과 재판부 간 설전이 이어졌다. 특검은 재판부 기피 신청을 2차례 신청하며 재판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터. 고삐를 바싹 조이고 있는 특검은 추가로 공판기일을 요청, 23일 다시 한번 재판이 열린다. 이 부회장은 6차 공판기일에도 법정에 출석한다.

 

더욱이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이 내년 114일에 예정돼 있어, 삼성을 둘러싼 사법리스크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의 경우, 국정농단 재판보다 사안이 복잡해 장기전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까지 얽힌데다, 관련 기관의 판단도 번복됐던 사안이어서다.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압박 속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까지 이 부회장의 기소를 요구하며 정치 재판이라는 비판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삼성은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하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결국 기소를 막지는 못했다.

 

특히 검찰과 삼성 모두 배수진이나 진배없다. 반시장정책을 강화하는 집권여당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국정농단 재판과는 또다른 모습이다. 법적 판단을 받은 사안을 다시 법적 심판대에 올리는 것에 대한 피로감과 비판이 좀더 많아진 것이다. 게다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한 데 이어 수사심의위 결정을 번복하며 수사와 재판 의지를 확고히 드러낸 검찰에 대한 불신도 한층 강해졌다. 검찰로서는 18개월의 수사 정당성을 입증할 기회이고, 삼성으로서는 명실상부 삼성의 1인자가 된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을 최소화할 방어선이기 때문에 치열한 법정 공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농단 재판을 비춰볼 때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도 최소 2~3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관측. 이 부회장이 재판 대응 준비 등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뉴삼성은 시작부터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삼성 안팎에서 나온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이 부회장이 사실상 삼성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했지만, ‘구심점인 이 회장이 타계한 지금은 이 부회장의 공백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들이 있기 때문에 일상적 경영활동에 크게 지장이 주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오너가 내부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외부엔 그룹의 비전을 제시해 지속적으로 건재하다고 보여줘야 한다. 현장경영이나 투자 등 오너가 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경영활동이 여의치 않다는 점에서 뉴삼성에 대한 추진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도 깜짝 실적을 냈다. 3분기엔 반도체와 스마트폰, TV와 생활가전, 디스플레이 패널까지 고르게 선방했다. 그러나 7분기 만에 처음으로 영업이익 10조원을 넘겼지만, 삼성의 혁신성과 함께 과제가 함께 드러난 성적표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초일류와 초격차를 강조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바뀐 생활양식과 소비방식으로 일부 부문에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프리미엄을 내세웠던 스마트폰은 결국 중저가 라인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생활가전과 TV는 프리미엄 제품 수요가 늘어난 덕분에 4년 만에 최대 실적을 냈지만, 차별화된 제품 발굴의 필요성이 드러났다.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장기적으로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설계와 생산의 비중을 조정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 부회장은 삼성도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라며 이전처럼 사업군을 확장하기 보다 중점 사업을 더욱 깊이있게 영위해 나가겠다는 방향성을 제사했다.

 

그러나 사법리스크로 대규모 인수합병(M&A)를 통한 사업 재편이 여의치 않자, 이 부회장은 현장경영을 강화, 사업 고도화를 모색해왔다. 최첨단 제품 수요를 잡기 위해 지난 5EUV(극자외선) 기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라인을 착공했고 6월에는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을 구축하기는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달에는 EUV 노광장비는 독점 생산하는 ASML의 네덜란드 본사를 찾아 추가 공급을 타진했고, 베트남에서도 휴대전화 등의 원가경쟁력 확보와 연구개발 강화를 위해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사법리스크가 장기화됨에 따라 이 부회장의 현장경영도 부자유스럽게 됐다.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 강제징용 등으로 경색된 한일관계, 미중 무역갈등. 보호 무역주의 확산, 세계 IT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 움직임 등 대외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공정경제 3법과 보험업법 개정 등으로 지배구조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삼성으로서는 오너 경영의 제약이라는 혹독한 과제까지 안게 됐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삼성의 사법리스크는 계속된 사안이기 때문에 특별히 극단적인 상황이 생기진 않겠지만, 대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삼성이 처한 상황은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할 제도가 마땅치 않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재벌에 새로운 자세만을 요구한 게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소액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에서 내려진 판단인지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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