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다정 기자]제철소 핵심 설비인 고로(용광로)에 대한 지자체의 ‘10일 조업정지’ 처분이 가시화되면서 철강업계가 들끓고 있다.

현재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고로 보유사들은 사상 초유의 가동 중단 위기를 겪고 있다.

앞서 지방자치단체들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대기오염물질을 무단 배출한 데 대해 ‘조업정지 10일 행정처분’을 내렸다.

제철소의 고로 정비 과정에서 대기오염 방지 시설이 없는 안전밸브를 열어 오염물질을 배출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국제적으로는 중국 자본이 국내에 대규모 스테인리스 공장 설립을 시사하면서 철강재 가격 하락을 물론 국내 관련 중소철강사들의 일자리 까지 줄어 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철강업계는 말 그대로 ‘내우외환’의 상황을 겪고 있다.

1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당진제철소 고로 조업을 10일간 멈추라는 충청남도의 처분에 대응해 지난 7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전라도와 경상북도에서 각각 10일간 조업정지 사전통지를 받은 포스코 광양·포항제철소도 법적대응을 검토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포스코는 행정심판으로 가지 않고 집행 취소 소송을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업체들은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 법에 따르면,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환경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경우 등 예외적 상황에만 정화시설을 거치지 않은 고로의 오염물질 배출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 온도가 1500도에 달하는 고로를 정비할 때는 폭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블리더(Bleeder)를 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 업체의 주장이다.

고로 상단에는 내부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나 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블리더가 설치돼 있다. 이 블리더는 공정에 이상이 발생하면 고로 폭발을 막기 위해 가스를 배출한다.

때문에 고로 정비시 안전밸브 개방은 고로 폭발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 행위이며, 아직 세계 어느 철강업체도 이 방법 외 개발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환경단체 입김때문?…‘탁상행정’ 비난 거세

이번 지방자치단체의 처분을 두고 업계에서는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의 여론이 거세다.

고로 블리더 개폐 이외에는 다른 기술적 대안이 없는 만큼 이번 조업정지 처분으로 인해 사실상 국내 모든 제철소가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철강협회는 설명자료를 통해 “고로를 정비할 때 일시적으로 안전밸브를 개방하는 것은 폭발방지 및 근로자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절차”라며 “고로 안전밸브 개방은 전 세계 제철소가 지난 100년 이상 동안 적용해 오고 있는 안전프로세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고로 정비시 안전밸브 개방을 일반정비 절차로 인정하는 등 고로 안전밸브 개방을 규제하는 관련 법적 규제가 없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고로 안전밸브의 개방을 특별히 규제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현재 고로 블리더를 통해 배출되는 잔류가스에 실제 대기오염 물질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규명되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환경단체의 주장에만 힘을 실어줬다는 이유에서 이번 조치에 대한 비판이 거센 상황이다.

환경운동연합은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대기 오염물질 무단배출 사실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기업들은 고로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의 양이 적어 인근에 미치는 환경 영햐잉 미미하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물질이 포함됐는지, 배출량이 얼마인지 제대로 측정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철강협회는 “안전밸브 개방시 배출되는 것은 수증기가 대부분이고, 고로 내 잔류가스 배출에 의한 환경영향은 미미하다”며 “이때 배출되는 잔류가스는 2000cc 승용차가 하루 8시간 운행시 10여 일간 배출하는 양에 해당된다”고 반박했다.

현재 이 잔류가스의 성분은 현재 국립환경과학원 주관으로 측정이 진행 중이다.

‘산업의 쌀’ 철강…수조원의 피해는 어쩌나?

이번 조업정지 처분으로 인해 철강업계가 입을 피해는 수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업정지 기간이 4~5일 초과하면 고로 안에 있는 쇳물이 굳어 고로 본체가 균열될 수 있다. 이 경우 재가동과 정상조업을 위해서는 최소 3개월, 경우에 따라 6개월 이상 소요된다.

실제 고로 1개가 10일간 정지되고 복구에 3개월이 걸린다고 가정할 경오, 약 120만톤의 제품감삼이 발생해 8000여억원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

국내 다른 고로들에도 똑같은 법리 해석을 적용할 경우 피해규모는 천문학적 수준으로 불어난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부 및 지자체의 논리대로라면 국내 총 12개의 고로도 모두 조업정지 대상이 된다. 고로 12개의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내리면 매출액 손실은 최소 9조6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이 피해가 철강업체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로부터 철강제품을 공급받는 자동차·조선·건설 등 산업 전방까지 직·간접적인 피해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철강협회는 “산업 생태계를 고려할 때 철강생산이 멈추면 철강을 사용하는 조선, 자동차, 가전 등 수요산업과 관련 중소업체들이 매우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다정 기자 92ddang@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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