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를 입어도 숨길 수 없는 탄탄한 근육…디젤의 고동소리

[스페셜경제 = 김은배 기자]2차 세계대전에서 빙산에 갇혔다 현 시대에서 깨어난 캡틴아메리카!


체로키를 처음 본 소감이었다. 군용차량에 뿌리를 둔 지프의 중형 SUV 5세대(페이스리프트) 체로키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어느샌가 군복을 벗고 도회적인 청년의 댄디한 캐주얼룩을 입고 있었다. 날렵하고 길어진 눈매, 매끈하면서도 날 선 바디. 심지어 타 브랜드들은 오프로드 이미지를 주겠다며 앞 다퉈 굵은 플라스틱재질로 덧대는 차체 하부 가니시를 오히려 차체와 같은 색상의 철판을 사용해 마감하는 등 도심형 SUV의 이미지를 한껏 살렸다.

하지만 현 시대의 캡틴아메리카도 셔츠 속의 바디는 여전히 강인한 초인의 신체이듯 체로키의 세련된 외관 아래에는 여전히 거칠고 야생적인 오프로더의 본성이 들끓고 있었음을 주행 중 깨닫고 말았다. 탄탄한 골격도 그대로다. 심지어 이번 시승 중 정차해 있는 기자의 체로키를 한 차량이 뒤에서 접촉사고를 내는 일도 있었는데, 기자는 순간 사고가 난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파악하는 데 수 초를 소비했다. 소리는 상당했지만 충격이 거의 전해지지 않아 다른 곳에서 난 소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한 탓이다. 영상시승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심지어 부딪힌 위치의 스크래치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는 확인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체로키는 78년의 헤리티지를 강조하는 지프의 모델 중에서도 특히 역사가 깊은 모델이다. 등장한 년도가 1974년으로 현재 오프로드의 대명사 격으로 사용되는 랭글러(1987) 모델보다도 10년 이상 선배다. 현 시대의 니즈를 반영해 겉모습을 다듬더라도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온 오프로더의 내공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 듯 했다.
 

탄탄한 중고속 안정성과 우월한 4단 저속
니들이 오프로드를 알아?…SAND & MUD

이번에 우리팀이 시승한 체로키는 작년인 2018년 4월 국내 출시된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디젤라인업 확장에 따라 추가로 올해 4월 출시 된 ‘2019 뉴 체로키’ 2.2 AWD 오버랜드 모델이다. 기존 가솔린 모델라인업은 론지튜드와 론지튜드 하이로 운영됐으며 금년 뉴 체로키 라인업 확장에 따라 리미티드 2.2 AWD와 오버랜드 2.2 AWD이 추가 출시 된 것. 모든 라인업은 앞서 2014년 출시 된 5세대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체로키는 지프 브랜드 내에서의 오랜 역사 못지않게 판매량 부분에 있어서도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체로키는 지프의 5개 SUV 모델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차량으로 출시 이후 전체 판매량의 30% 차지하며 지프의 베스트셀링 모델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겉만 봐선 차가운 도시남자

외관적으로는 지프 특유의 가로로 나열된 세로그릴이 멋스럽다. 헤드램프는 이전 5세대 모델과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당초 2014년 체로키 5세대 모델은 지금의 현대차 코나, 싼타페, 펠리세이드 등의 디자인에 영감을 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은 모양이었다.

당시 모델은 헤드램프와 주간주행등이 분리 돼 기존 램프 위치에 가늘게 주간주행등 만 남고 헤드램프는 안개등 보다 약간 높은 위치로 내려온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페이스리프트 버전에서는 헤드램프와 주간주행등이 다시 한 덩어리가 됐다. 다만 그럼에도 헤드램프의 폭은 그리 두껍지 않다. 위아래로 얇고 옆으로 긴 최신트렌드의 형태다. 맹금류의 눈처럼 안쪽 눈골이 날카롭게 패인 것도 특징이다. 오프로드 차량답게 안개등은 여전하다 이같은 특성에 맞춰 뒤에도 안개등이 달려있다.

높게 들어 올려 진 마름모꼴 휠 아치도 오프로드 차량의 특징 중 하나다. 다만, 휠 아치에서 양방향으로 뻗어나가는 하부 가니시는 바디와 같은 색감의 철판으로 마감했다.

이러한 하부 가니시가 오프로드의 이미지를 추구하고 싶어 하는 도심형 SUV들이 실용성과 관계 없이 장식으로라도 넣고 싶어 하는 디자인적 요소인 것을 감안하면, 굳이 오프로드임을 외형적으로 어필할 필요가 없다는 체로키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듯하다. 측면부의 실루엣은 곡선이 강조 돼 마치 한 마리의 물고기를 연상시킨다. 우리가 시승한 오버랜드 모델에는 새롭게 디자인 된 19인치 알루미늄 휠이 적용 돼 있는데 투톤의 색감이 고급스럽다. 마감은 무광재질처럼 돼 있으나 은은한 광택이 돈다. 루프레일의 디테일도 훌륭하다.

후면부 역시 상당히 디테일에 신경을 쓴 모습이다. 바디 자체의 굴곡이나, 크롬의 배치나 색감과 모양 모두 유려하다. 특히 리어램프의 디자인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램프가 세로로 나열 돼 있는데 앞면의 그릴을 연상시킨다. 앞서 언급한 후방 안개등도 멋스럽다.

내부 디자인은 기존 5세대 모델과 크게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렵다. 각종 오염 가능성이 높은 오프로드의 특징에 걸맞게 대시보드의 가죽이 매끈하게 처리된 것이 특징이다.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디스플레이는 8.4인치가 적용됐다. 터치감은 훌륭한 편이지만 열선이나 통풍시트같은 옵션을 물리적 버튼이 아닌 이 디스플레이를 거쳐야만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은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클러스터 중앙에는 7인치 TFT 컬러 EVIC가 적용됐다. 계기판 자체는 아날로그 식인데 비교적 작은 크기에 디테일적인 요소들이 많아 고급스럽다. 다만, 디스플레이가 큰 것에 비해서 네비게이션과 관련해 주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 등 간단한 기호만 적용된다.

시트의 경우 운전석과 조수석의 넓이는 부족함이 없다. 2열 자체은 썩 넓은 편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래도 레그룸은 평균적인 수준은 된다. 다만 파노라마 선루프가 들어간 상황에서 헤드룸은 차급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부족한 수준이었다.


트렁크 공간은 731리터다. 중형 SUV치고 트렁크 공간이 큰 편은 아니다. 다만, 2열을 접어 최대 1,549L까지 활용할 수 있고 2열은 시트 아래 레일을 통해 앉은 자세 그대로 앞쪽으로 밀 수도 있다. 리클라이닝기능까지 있으니 융통성 있게 짐을 실으면 될 듯싶다. 2열과 트렁크를 분리할 수 있는 차단막도 있고, 전자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구성이라든가 쇼핑백 등을 걸 수 있는 고리 등도 제법 많은 편이다.

와일드한 감성 & 우월한 중고속 안정성

핸들을 잡고 엑셀을 밟기 시작하면 외관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현대적 이미지는 증발해버린다. 핸들부터가 묵직하고 특유의 디젤 음이 쏟아져 들어온다. 다만, 풍절음이나 외부잡음의 경우는 고속상황에서도 거의 들리지 않을만큼 방음성능은 뛰어나다. 디젤엔진에 대한 기호로서 접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브레이킹 시스템도 다소 묵직하며, 엑셀레이터의 감각은 초반부가 가볍다. 다만 일정속도 이상 올라가면 엑셀레이터 역시 묵직하고 깊게 눌러줘야 한다. 가속성능의 경우 재원상 마력이 195ps 토크가 45.9kg·m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다소 아쉽다. 9단 자동변속기는 RPM을 충분히 잘 활용한다는 느낌이 들지만 초반 가속부분에서는 울컥임이 어느정도 있다.

다만 일단 속도가 붙고나면 고속상황에서의 안정감이 매우 흡족하다. 시트자체도 딱딱한 성향일뿐더러 차량 서스펜션 자체가 매우 육중한 느낌이라 차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바디롤의 체감이 적은 것은 아니다. 차량은 굉장히 안정적으로 주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타고 있는 사람의 몸을 잡아주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낀다. 운전자의 편안함과 안정성 보다는 차량의 도로주파능력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 같은 세팅이다.

차량의 주행모드 시스템인 지프 셀렉-터레인(Jeep® Selec-Terrain®)만 봐도 그러한 특성이 느껴진다. 오토모드가 기본이고 스포츠모드가 지원되며, 지프의 특성을 담은 SNOW모드와 SAND/MUD 모드가 존재한다. 지프의 다른 차종에는 여기에 추가로 ROCK모드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체로키의 경우는 빠져있다. 하지만 이 자체로도 다른 SUV에서는 보기 힘든 특별한 주행모드를 갖춘 셈이다.

 

영상을 여름의 초입인 7월초에 촬영한 탓에 SNOW 모드를 제대로 테스트해보지는 못했다. 다만 일반 주행 중에 사용했을 때 다소 움직임에 대한 저항이 더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이 모드를 사용했을 때의 특징 중 하나는 클러스터와 센터페시아의 디스플레이가 거의 꺼진 듯이 조도가 내려간다는 점이다. 눈길에서의 빛 반사 등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SAND/MUD 모드의 경우 서스펜션이 다소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차체가 미세한 바운스를 타게 되는 데, 마치 태권도나 택견 선수들이 실제 타격자세를 취하기 전에 몸을 지속적으로 흔들어주는 스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체로키 자체의 험지주행능력도 탁월한데 이 모드까지 갖춰지면 왠만한 비포장도로와 방지턱 등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바치 바퀴가 4개가 아니라 여러 개의 바퀴가 달려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타 브랜드의 비슷한 체급의 오프로드 성향을 추구하는 도심형 SUV들의 험지주행능력도 나쁘지 않지만 험지주행능력만 놓고 봤을 때, 체로키에 갖다 대면 비교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지프만의 오프로드 기능은 또 있다. 4WD LOW 기능인데 속도가 1/3로 떨어지는 대신 힘이 3배가 된다. 이 기능을 활성화 하기 위해서는 기어를 N단으로 한번 변경해야 하며 일반도로에서 이 기능을 켜면 엔진의 진동이 몇 배로 느껴진다. 실제 이 기능을 활용해 언덕을 넘을 때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일반적인 SUV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경험이다.

4WD기능을 활성화하면, 내리막주행제어장치(HDC)도 사용할 수 있다. 내리막길에서 이 기능을 활용하면 브레이크를 밟은 듯 정지하는 수준의 제동이 걸린다.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통상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을 때 정도의 속도로 바닥을 꽉 잡고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속도조절은 패들시프트 또는 기어노브를 활용해 올리고 내릴 수 있다. 실제 비탈길이나 비포장 산길 등에서 충분히 좋은 성능을 낼 것으로 보인다.


시스템보단 운전자의 직관을 우선

체로키에 탑재된 기타 안전장치 및 편의사양들도 상당하다. 업그레이드 된 4륜구동 시스템 ‘액티브 드라이브 II 4WD’가 적용됐으며 앞서 언급한 4WD LOW기능과 HDC, 오토 하이빔 컨트롤(AHHC) 시스템, 앞좌석 열선 및 통풍시트, 뒷좌석 열선시트 등이 적용됐다.

주행보조장치로는 전방 추돌 경고 플러스 시스템, 차선이탈방지 보조 시스템, 스피드 리미터 시스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스톱 & 고 시스템 등이 적용됐다.

스톱 & 고 시스템은 연비절감과 환경오염방지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기능이며, 디젤 엔진의 특성과 잘 어울리는 점이 있다. 다만, 체로키의 경우 초반 가속부분에서 울컥거림이 다소 있는 만큼 지나치게 정체되는 구간에서는 이 기능이 운전자에게 피로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의 출퇴근 상황 등 심각한 정체구간에서는 이 기능을 끄는 것을 추천한다. 이 기능은 시동을 켜면 자동으로 활성화 돼 별도의 버튼을 눌러 기능을 멈춰줘야 한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이나 차선이탈방지 시스템의 경우 인식률과 반응속도 등이 우수한 편이다. 다만, 자율주행 2레벨 수준인 만큼 완전히 이를 믿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인식률이 좋은 편이라고 해도 인식을 못하는 구간은 제법 발생한다. 다만, 코너링 시에 차선을 인식해 핸들조향에 힘을 보태준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개인적으로 좋았다.

스피드 리미터 기능의 경우 엑셀을 아무리 밟아도 속도가 올라가지 않으므로 사용에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크루즈 컨트롤과 어탭티브 크루즈컨트롤의 경우 설정 값이 세팅 된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엑셀레이터를 밟아 이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 시스템적 판단보다 사용자의 판단을 우선하는 세팅인 셈이다. 반면 스피디 리미터의 경우는 설정 값이 우선이다.

그래서 체로키는 어떤 차?

호랑이는 동물원에 들어와 있어도 호랑이인 모양이다. 체로키는 트렌드에 맞춰 점차 젊고 세련된 외관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안에 들어있는 심장은 여전히 오프로드의 그것이다. 도심형 SUV로서도 나름 좋은 면모를 보이겠지만 복잡한 도로에서의 출퇴근이나, 가족·친구들과의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탑승자를 얼마나 편하게 해주느냐가 목적이라기 보다, 어떤 장소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게 해주는 신뢰성이 체로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산길 빗길 눈길 진흙길 등을 거쳐서라도 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체로키는 충분히 그 바람을 만족시켜줄 능력이 된다.


스페셜경제 / 김은배 기자 silvership@speconomy.com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