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51주년 기념식..이재용 부회장 불참
김기남 "이건희 도전과 혁신 DNA 계승"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삼성전자의 화두는 ‘100년 기업그리고 동행이었다.

 

2일 삼성전자가 51번째 창립기념식을 진행했다. 삼성전자의 창입기념일은 전날인 1일이었으나, 주말인데다 고() 이건희 회장의 장례 일정 등으로 이날 기념식이 진행됐다.

 

이 회장의 타계로 이재용 체제로 접어든 이후 첫 공식행사인 만큼, 이날 기념식에서 삼성이 내놓을 메시지에 관심이 쏠렸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에도 미래 사업 전략이나 장기 비전 발표를 하지 않았다. 올해는 이 회장의 장례가 치러진 지 열마 되지 않았지만, 이 부회장이 그룹의 수장에 오르는 등 변화가 있기 때문에 뉴삼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하지만 이날 이 부회장은 따로 메시지를 내지 않았고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창립 50주년이라 이례적으로 메시지를 낸 것이라며 올해만 다른 게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창립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었다고 설명했다.

 

대신 이날 기념식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이 부회장이 공언했던 뉴삼성의 큰 그림이 읽힌다.

 

김기남 대표이사(부회장)는 기념사를 통해 우리에게 내재된 도전과 혁신의 DNA’를 계승 발전시키고 지혜와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회장님이 남기신 도전과 열정을 이어받아 업계의 판도를 바꿔 나가는 창조적인 기업으로 진화하자고 강조했다. “우리의 경쟁력이 최고의 인재에서 시작된 만큼 임직원간 서로 배려하고 상호 신뢰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미래 사회에 공헌하는 지속가능한 100년 기업의 기반을 구축하자고도 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속에서 삼성 임직원이 안팎에서 실천했던 동행의 성과를 영상으로 돌아봤다.

 

100년 기업과 사회와의 동행은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앞으로 50, 마음껏 꿈꾸고 상상하자. 50년 뒤 삼성전자의 미래는 임직원들이 꿈꾸고 도전하는 만큼 그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며 우리의 기술로 더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자.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인 만큼, 삼성의 새로운 사회공헌 비전인 함께가요 미래로! Enabling People’을 다 함께 실천해 가자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지향하는 뉴삼성의 방향성은 지속 가능한 기업이자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임을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급격히 몸집을 불렸다. 반도체와 가전, 휴대전화에 집중 투자해 기술 초격차를 실현한 결과, 1987년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2000억원, 시가총액 1조원에서 2018년 매출은 387조원으로 약 39, 영업이익도 72조원으로 359, 시가총액 역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늘었다.

 

그 결과 세계 5위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국내에선 외풍에 시달렸다. 시민사회단체로부터는 무노조 경영, 승계 문제로 고발당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벌 개혁의 상징으로 꼽히며 사정의 칼 날이 향했다.

 

올해 삼성전자의 외풍은 더욱 거세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 세계 각 국의 보호무역주의 확산, 미국 대통령 선거, 일본의 스가 내각 출범, 반도체를 비롯한 세계 IT업계의 기술경쟁과 인수합병(M&A) 등 불확실성의 파고가 높아졌다. 이에 더해 이 부회장을 향한 국내에서의 압박도 커졌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이 줄줄이 잡혀있고, 준법경영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도 보다 강해졌다. RE100 가입과 같은 친환경 경영 강화에 대한 압력도 상당하다.

 

특히 이 부회장은 삼성 총수 최초로 구속되며 대내외 압력을 체감했다. 이로 인해 그는 삼성의 중심을 잡고 삼성의 제품·서비스를 넘어 가치와 정신이 인정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고민해왔다. 20185월 공정위원회의 기업집단 동일인 지정으로 총수가 된 뒤 처음 나온 메시지가 100년 기업과 사회와의 동행이었던 것도 그의 고민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향후 이 부회장의 행보 역시 삼성의 내·외적 성장을 공고히 다지는 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장 경영을 통해 안으로는 구성원을 북돋우고 밖으로는 삼성의 건재함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곳은 일본이다. 지난달 23일 베트남 출장 귀국길에서 이 부회장은 일본도 고객들을 만나러 한번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일본 반도체 핵심소재 업체, 5G(5세대 이동통신) 기업들과의 협력 강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5G 통신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한 미국이나 화웨이 제재 참여로 동요하는 중국 등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동시에 인사를 통해 분위기 쇄신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12월 첫째주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고 후속 임원 인사 명단을 공개해왔다. 다만 지난해에는 재판으로 인사가 미뤄져 올 초에 진행됐다. 올해는 일단 명실공히 삼성의 1인자가 된 이 부회장의 첫 인사인 만큼, 사업 부문별 성과를 반영하되 혁신·안정·공정이라는 큰 틀에서 이뤄질 것으로 여겨진다.

 

동장 동력을 만드는 M&A와 투자 가능성도 거론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 세계 IT기업들은 공격적 M&A로 미래 기술 선점에 나서고 있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하며 기술 격차 좁히기에 들어갔고, 엔비디아, AMD도 연이어 M&A를 발표하며 반도체 시장에서의 지배력 확대에 나섰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사인 대만 TSMC는 올해 설비투자에 160억달러 이상을 투입하며 초미세 반도체 공정 개발과 생산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2016년 미국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한 이후 M&A가 중단된 상태다. 이에 따라 시스템반도체와 인공지능(AI), 5G, 전장, 바이오 분야에서 기술 혁신을 위한 M&A를 재개해 뉴삼성의 비전을 선명히 할 것으로 재계는 내다보고 있다.

 

사회와의 동행 또한 보다 뚜렷해질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베트남 출장에서 뒤쳐지는 이웃이 없도록 주위를 살피자. 조금만 힘을 더 내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국내외를 아우르는 상생행보를 통해 삼성을 둘러싼 논란을 털어낼 것으로 여겨진다. 사내 4개 노조 공동교섭단이 단체교섭 진행을 위한 실무자 협의를 진헹 중인 점을 고려하면 노사관계는 전향적으로 변할 것으로 보인다.

 

산학협력이나 1·2·3차 협력회사에 대한 지원은 보다 촘촘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스타트업, 중소·중견기업에게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리스타트프로그램이나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스마트 지원의 폭이 넒어질 수 있다.

 

경영권 승계 때마다 인구에 회자되는 상속세 문제, 지배구조 개편도 조속한 시일 내에 해결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판단된다. 경영권 승계 문제로 몸살을 앓아왔기 때문에 이 부회장으로서는 가장 큰 과제이기도 하다. 이미 LG그룹, 롯데그룹이 성실한 납부를 약속한 터라 오너의 지배력이 최대한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납세 의무를 이행해 준법경영의지를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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