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 속 세대교체 바람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올해 대기업 임원 인사는 인적 쇄신에 초점을 맞춰 이뤄질 전망이다. 미중 무역갈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시장 불확실성이 증폭된 상황에서 기업들이 가장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인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3,4세로의 승계가 진행되는 과도기인 점을 고려하면, 후계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세대교체가 폭넓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비대면 문화를, 장기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이끌 IT 인재와 70년대생이 전면에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신호탄을 쏘아올린 곳은 롯데그룹이다. 1967년 창립 이해 처음으로 8월 인사를 단행하며 인적 쇄신에 나섰다. 롯데의 2인자로 불려온 황각규 부회장이 롯데지주 대표이사에서 전격 퇴진하고 이동우 전 롯데하이마트 대표가 후임으로 발탁됐다. 경영전략실은 경영혁신실로 바뀌면서 이훈기 롯데렌탈 대표이사(전무)가 사령탑을 맡았고, 경영전략실장이었던 윤종민 사장은 롯데인재개발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현수 롯데물산 대표이사(사장)은 롯데렌탈 대표이사로, 롯데물산 대표이사에는 류제돈 롯데지주 비서팀장이 선임됐다. 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 원장은 롯데액셀러레이터 대표이사를 맡게 됐고, 롯데하이마트는 황영근 영업본부장이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롯데그룹은 유통과 석유화학이 고전하면서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올 상반기 롯데케미칼은 53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롯데쇼핑도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82%나 줄면서 2423억원의 적자를 봤다. 8월 인사를 통해 그룹의 전략라인을 대대적으로 바꾼 것은 이 같은 실적 악화의 책임을 묻고 인적 쇄신을 위한 신호탄이었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이에 따라 후속 인사도 고강도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유통과 석유화학 업황이 단기간 내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만큼, 그룹을 유연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데 무게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됐으므로, 신동빈 회장 중심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 4BU의 책임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이미 롯데그룹은 후속인사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전 계열사 600여명 임원들의 최근 3개년 인사평가를 지난달 말까지 완료하도록 했다. 예년보다 약 20여일 일찍 진행된 것으로, 연말 인사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2월 중순이후 발표됐던 인사가 올해에는 이르면 11월 중하순, 늦어도 12월 초경에는 이뤄질 것으로 점쳐진다.

 

한화그룹도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8일 사장단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전략부문장(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아울러 한화 글로벌·방산부문, 한화정밀기계, 한화디펜스, 한화종합화학 사업·전략부문, 한화토탈, 한화에스테이트, 한화역사 등 10개 계열사 대표이사도 물갈이됐다. 김은희 한화갤러리아 기획부문장이 한화역사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한화종합화학 사업부문에는 박흥권 한화 전략실장이, 전략부문에는 박승덕 한화솔루션 사업전략실장이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한화토탈에는 김종서 한화큐셀 재팬법인장이, 한화·글로벌부문에는 김맹윤 한화솔루션·큐셀 부문 유럽 사업부문장이, 한화·방산부문에는 김승모 한화 사업지원실장이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한화정밀기계는 옥경석 한화 화약·방산 및 기계 부문 대표가, 한화디펜스에는 손재일 한화·지원부문 전무가 각각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한화에스테이트는 이강만 한화 커뮤니케이션위원회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임명됐다.

 

한화그룹 역시 롯데처럼 변화특히 세대교체에 신호탄을 쏜 인사였다. 한화큐셀·한화첨단소재·한화케미칼을 합병해 출범시킨 한화솔루션에서 전략을 총괄해왔던 김동관 신임 사장을 승진시키며 3세 경영의 닻을 올렸다. 특히 김 신임사장이 주력해 온 태양광 사업 계열 출신들이 대거 약진하며 친정체제의 기반을 다지는 모양새다.

 

그룹의 세대교체 속도도 앞당겨졌다. 40대 대표이사와 그룹 최초의 여성 대표를 전격 발탁하며 혁신 의지를 드러낸 결과, 한화그룹 최고경영자(CEO) 평균 연령이 58.1세에서 55.7세로 낮아졌다.

 

한화그룹이 코로나19 등으로 대내외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가중하는 가운데 내년도 사업 전략을 선제적으로 수립하고 조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표이사 인사를 일찍 실시했다, 나이, 연차와 상관없이 전문성과 역량을 보유한 인재를 과감히 발탁해 전면 배치했다고 밝혔듯이 후속인사에서도 과감한 변화를 위한 차세대 경영인을 대거 발탁할 가능성이 높다.

 

신세계그룹도 세대교체가 화두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명희 회장의 지분 증여로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총괄사장이 이마트와 신세계의 최대주주에 오른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계열 분리에 앞서 조직을 혁신할 외부 인재를 영입해 보다 선명한 색깔을 갖출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코로나19 장기화로 이마트와 신세계 모두 부진했던 만큼, 비대면 소비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사업을 재편하는 방향으로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여겨진다.

 

삼성과 현대차그룹, LG, SK 인사에서도 세대교체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SK를 제외한 세 그룹은 총수가 교체되는 과도기에 있다. 그룹 내 리더십을 강화하고 미래 핵심성장 동력을 선점해야 할 책임이 크다. 이들 그룹의 인사는 분위기 쇄신에 방점을 찍되, 디지털 전환 기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IT 인재 발탁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안정과 연륜을 택한 삼성은 올해에는 위기 돌파를 위해 세대교체의 폭을 넓히는 인사를 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LG 역시 신설법인인 LG에너지솔루션 경영진 인사를 시작으로 선택과 집중에 따른 경영진 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지난해부터 연말 정기 임원 인사 대신 수시 인사 체제로 전환한 현대차그룹은 내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한 아이오닉 출범을 앞두고 관련 인사 영입에 속도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코로나19를 혁신의 기회로 삼자고 강조했던 점을 고려할 때 바이오·배터리 등 핵심 먹거리와 관련, 인사를 통해 혁신의 폭을 넒힐 수 가능성이 있다.

 

오일선 CXO연구소 소장은 올해는 경영환경이 좋지 않아 기업들의 정기 인사가 조금 당겨질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코로나19라는 상수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더욱 신중하게 고민할 가능성도 있다중요한 것은 기업 경영진 인사에서 세대교체는 몇 년 동안 활발히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70년대생과 IT 인재가 전면에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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