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2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재계의 해묵은 앙금이 풀릴 조짐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에 CJ그룹, 현대가가 찾아 함께 슬픔을 나눈 것이다. 특히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범삼성가에서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 자리를 지켰다. 

 

이재현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조카로 부친인 고(故)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은 생전 삼성그룹 경영 승계를 놓고 이건희 회장과 갈등을 빚었다. 

 

이재현 회장은 전날인 25일 오후 3시 40분께 범삼성가 인사로는 가장 먼저 이건희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부인 김희재 여사와 딸인 이경후 상무, 아들 이선호 부장도 함께 조문한 이재현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도착할 때까지 빈소를 지켰다. 이후 이 부회장 등 유족을 만나 위로하고 약 1시간30분 가량 빈소에 머물다 돌아갔다. 

 

이재현 회장은 고인에 대해 “국가 경제에 큰 업적을 남기신 위대한 분”이라며 “가족을 무척 사랑하셨고 큰 집안을 잘 이끌어주신 저에게는 자랑스러운 작은 아버지”라고 표현했다. 이어 “일찍 영면에 드셔 황망하고, 너무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고 애도했다. 

 

조문을 계기로 두 그룹 간 소통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생활·미디어 플랫폼 기업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다지는 CJ그룹으로서는 세계적 IT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과의 협력으로 상당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경영 승계와 상속으로 인해 갈등의 골이 깊어졌던 선대의 앙금을 풀고 두 그룹 간 발전적 관계를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갈등의 시작은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호암 이병철 회장은 장남인 이맹희 전 명예회장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에 연루되는 등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응 후계자로 낙점한다. 이 전 명예회장은 1973년 이후 동생과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다. 

 

두 그룹의 갈등이 수면에 떠오른 것은 이 전 명예회장이 상속재산 소송을 벌이면서다. 2012년 이 전 명예회장은 이병철 창업주의 상속재산을 놓고 1조원대 소송을 제기했고, 양측의 골을 깊어졌다. 소송은 1, 2심에서 이 회장이 승소, 이 전 명예회장이 상고를 포기하며 끝났지만 이들의 화해는 끝내 불발됐다. 

 

하지만 이 전 명예회장이 2015년 8월 향년 84세로 중국에서 뱔세할 때까지 앙금을 풀지 못했던 선대와 달리 3세 사이에서는 화해 기류가 흘렀다. 지난 2014년 이재현 회장이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됐을 당시 이 부회장 등 범삼성가에서 탄원서를 제출했다. 2015년 이 전 명예회장이 별세하자 이 부회장이 가족과 함께 공식 조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빈소를 찾아 이재현 회장을 위로하기도 했다. 2018년 삼성맨 박근희 CJ대한통운 부회장을 영입할 때에는 이재현 회장이 이 부회장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상속 분쟁 이후 범삼성가가 이병철 창업주 추모식에 함께 자리한 적은 없다. 그러나 이번에 이재현 회장이 이 회장의 빈소에 가장 먼저 찾아 묵은 감정을 털어낼 것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창업주 사이의 묵은 감정도 녹는 분위기다. 재계 1,2위를 다투는 라이벌로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진출한 뒤 사이가 냉랭해진 련대가와 사이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정몽규 HDC 회장과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은 25일 이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25분 간 빈소를 머무른 이들은 유족들의 슬픔을 위로했다. 정몽윤 회장은 “고인은 우리나라 재계의 큰 거목이셨다. 그게 가장 정확한 표현같다”라고 추모했고, 정몽규 회장도 “(이 부회장에게)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차그룹과는 더욱 발전적 관계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두 그룹의 총수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이 부회장은 막연한 사이로 알려져있다. 두 사람은 골프를 치거나 식사를 하는 등 자주 만나 사적인 고민부터 경영 현안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다. 

 

이같은 친분이 사업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5월과 7월 삼성SDI 천안사업장, 현대차 남양주연구소에서 번갈아 방문하며 미래차를 비롯한 혁신 기술에서 협력을 논의했다. 현대차는 내년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이 장착된 순수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을 출시하고 본격적인 전기차 양산에 들어간다. 전고체 배터리 등 미래 배터리 기술연구를 진행 중인 삼성SDI와이 협력이 중요하다. 아직 현대차로부터 수주 물량을 확보하지 않았지만, IT 분야에서 기술 리더십을 가진 삼성전자인 만큼, 두 그룹의 협력은 전장, 반도체, 통신 등 폭넓은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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