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 파괴’ 통한 일거양득…왜 윤석열인가?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흔히 권력을 가지면 변한다고들 말한다. 인간이 지배욕과 과시욕이라는 성정을 타고났다는 철학적 전제를 염두에 두고 본다면 ‘권력을 가지면 변한다’는 말을 항등식처럼 정의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런 권한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경우 개인이든 집단이든 오만에 빠져버리기 쉽다는 지적은 군주제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논리로도 흔하게 차용된다.

오늘날과 같은 민주사회에도 배타적 권한을 누리는 개인이나 집단은 있지만 그 대부분은 민주적 정당성이 반영된 법적 한도 내에서만 권한의 행사를 보장받는다. 대통령이 그렇고 국회의원들과 기초의원들이 그렇다.

하지만 ‘유착’이라는 말이 때로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처럼, 오로지 법적으로만 막대한 권한을 보장받는 조직은 정치집단과 결탁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 ‘수사권’이라는 삼위일체의 권한을 가진 검찰은 정권을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일례로 정부가 추진 중인 국정과제가 검찰에 의한 핵심인사 구속 등으로 저지될 수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권의 칼이라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다가도, 기회만 있으면 주인의 손을 무는 모습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태도를 보면 레임덕이 왔는지 알 수 있다는 조소까지 나오곤 한다.

이런 면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검찰에 ‘우리 쪽 사람’을 심기 위해 고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지명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또한 그런 케이스에 해당될 수 있다. 과거 최순실 게이트와 사법농단수사, 국정원댓글사건 수사 등 ‘적폐청산’의 과제를 진두지휘해 온 그였지만 이번 인선을 두고 일각에서는 사법장악 시도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문 대통령이 차기 검찰총장으로 윤석열 후보자를 내정한 배경을 분석하고 그의 지명을 통한 노림수에 대해 짚어봤다.
일거양득 노린 검찰조직 개편과 반발 무마

文대통령 적폐청산·검찰개혁 의지 재확인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의 기치를 내걸며 출범한 현 정부의 첫 번째 검찰총장 후보자로 올랐던 문무일 검찰총장은 2017년 7월 인사청문회 당시 △투명한 검찰 △바른 검찰 △열린 검찰을 만들 것을 약속하며 검찰의 대국민 신뢰회복을 다짐하기도 했다.

문 총장의 임기가 오는 7월 종료됨에 따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로 윤석열(59·사법연수원23기)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명했다. 당정청이 추진 중인 검찰개혁의 두 번째 주자를 선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윤 후보자를 지명하기 전부터 이번 인선에는 ‘파격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윤 후보자가 문무일(18기) 현 검찰총장보다 무려 다섯 기수 아래인데다가 검찰총장으로 최종 임명될 경우 고검장 직을 거치지 않은 첫 사례로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기수서열’을 강조하는 검찰 고유의 수직적·권위적 조직문화가 한 몫 한다.

그동안의 관행을 따른다면 윤 후보자의 동기 이상(19~23기)급 검사장들은 대부분 옷을 벗어야 한다. 여기에는 신임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보장해준다는 점과 함께 후배 지시를 받으며 일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 혼재돼 있다.

때문에 문 대통령이 검찰조직의 안정을 염두에 둔다면 윤 후보자와 함께 최종 후보군에 올랐던 김오수(56·20기) 법무부 차관, 봉욱(54·19기) 대검찰청 차장검사, 이금로(54·20기) 수원고검장 중 최고참인 봉 차장검사를 지명할 것이라 전망하는 분위기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네 명의 후보들 가운데 윤 후보자를 택한 것은 그만큼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상인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2주년 KBS대담 당시에도 적폐청산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적폐수사를 끝내고 이제는 협치와 통합으로 나가자는 말이 있는데, 적폐 수사나 재판은 우리 정부가 시작한 것이 아니고 앞의 정부(박근혜 정부)에서 이미 시작했던 일이고, 살아 움직이는 수사를 정부가 통제할 수도 없을뿐더러 통제해서도 안 된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 또한 17일 윤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탁월한 지도력과 개혁의지로 국정농단과 적폐청산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다”며 “아직 사회에 남은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를 뿌리 뽑음과 동시에 시대적 사명인 검찰개혁과 조직쇄신 과제도 훌륭히 완수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수파괴 감내하면서까지…왜 ‘막내’인가

이미 국회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의 공조로 검경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공수처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데 이어 지난달 20일 당정청 협의회에서는 ‘국가수사본부’ 신설 등을 통해 정치권·법조계에서 우려하는 경찰권한 비대화 방지대책을 마련하며 검찰개혁의 포석을 깔아둔 상태다.

하지만 윤 후보자는 그동안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에 대한 뚜렷한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부분적으로나마 그의 견해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지난해 10월 서울고검 국정감사 때 발언이다.

당시 그는 ‘검찰의 직접수사가 축소되면 향후 수사지휘는 어떻게 해야겠느냐’란 질문에 “수사를 누가 하는지 보다 (형사절차에서)기소는 검찰이 하고 공소유지를 통해 유죄판결로 법 집행을 하는 만큼, 검경이 한 몸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윤 후보자에게 있어 검찰 본연의 임무는 수사보다 기소 및 공소유지에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점은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을 추진 중인 청와대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회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는데 신임 검찰총장이 또다시 수사권 조정에 반기를 들면 정부여당으로서는 난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종 후보자 네 명 중 수사권 조정에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김오수 법무부 차관을 제치고 윤 후보자가 지명된 점 또한 검찰조직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하는 것이라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당초 거론된 후보군 중 막내인 윤 후보자를 지명함으로써 기수서열을 강조하는 경직적이고 권위적인 검찰조직 문화를 흔드는 동시에 검사장급 간부들의 용퇴, 즉 ‘자발적 인적쇄신’을 통한 검찰 반발을 잠재우는 일거양득을 이룰 수도 있다.

지난달 해외 순방 중이던 문무일 총장이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정조준하고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검찰 내부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데 이어 몇몇 지검장들은 현 수사권 조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하며 지원사격을 시작했다.

송인택(21기) 울산지검장은 국회의원 300명(당시 기준) 전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국회에서 논의 중인 검찰개혁의 진단과 처방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그는 당시 이메일에서 청와대의 수사개입이 잘못된 것임을 강조하며 △법무부·청와대로의 수사정보 사전보고 시스템 개선 △정치분쟁 방지목적의 상설특검회부 제도 마련 △경찰 주도 하에 정치적 사건·하명사건수사 △대통령·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검사 인사제도 등을 주장했다.

윤웅걸(21기) 전주지검장 또한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인권보장을 위한 검찰 순기능이 사라지고 정치 예속화라는 역기능은 심화될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1월에도 법무부의 수사권 조정안을 정면으로 비판한 바 있다.

즉 청와대의 이번 ‘검찰 기수파괴 인선’이 대대적인 세대교체로 이어지며 이러한 고위급 검사들의 반발 또한 무마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문 대통령의 윤 후보자의 지명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사법개혁·적폐청산 드라이브의 두 번째 기어를 넣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 동시에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던 검찰 조직력 또한 점차 약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차기 인선 관심집중…동기 잔존 전례 있어

다가오는 대규모 인사폭풍…일부 잔존할 수도

현재 검찰 내부에서 19~23기 검사장급 인사는 외부 개방직인 대검 감찰본부장을 제외한 40명 가운데 19기 3명, 20기 4명, 21기 6명, 22기 8명, 23기 10명 등 윤 후보자를 포함해 총 31명으로 파악된다. 이 중 고검장급만 해도 8명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윤 후보자가 함께 거론되던 후보들 중 기수만 낮을 뿐 가장 나이가 많아 선배 기수에게도 ‘형’이라 불리던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일부는 검찰에 남아 조직 안정화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 내다보기도 한다.

그동안은 동기까지 옷을 벗는 게 관행이었으나 예외도 있었다.

2005년 11월 취임한 정상명(7기) 전 총장은 동기들과 ‘집단지도체제’를 구성, 주요 사건 처리방향 등을 함께 논의했다. 김종빈 전 총장이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받아들이고 물러나면서 검찰총장 기수가 반년 만에 네 기수 내려가 인사폭풍이 예고되던 때였다.

노컷뉴스 권영철 대기자에 따르면 윤 후보자는 주변에 ‘동기들 뿐 아니라 윗기수들도 일부는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2년 전 윤 지검장을 발탁할 때와 비교하면 검찰 내부에서 동요하는 움직임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상당수의 윤 지검장의 동기 검사장들 또한 당연히 자리를 지키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와는 달리 윤 후보자의 경우 9명에 달하는 23기 동기 전원에게 동급의 대우를 약속하며 협력을 구하기는 어려워 상당수 교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안팎에서는 대개 한 해 검사장 승진 대상을 10명 내외로 보는데, 다가올 인사에서는 예년과 달리 폭풍이 불어 닥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검사장 승진 규모가 15명을 넘어설 것이라 예상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검찰 내부에서도 요직 중의 요직으로 꼽히는 차기 서울중앙지검장 인선이다. 청와대가 윤 후보자 인선을 발표하며 적폐청산을 계속할 것이란 의지를 다진 만큼 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가 배정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부에서는 ‘대윤(大尹)·소윤(小尹)’으로 불리며 윤 후보자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윤대진(55·25기) 법무부 검찰국장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이성윤(57·23기) 대검 반부패부장과 조남관 대검 과학수사부장(54·24기) 등도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무엇을 노렸나…사법장악 시도라는 지적도

이번 검찰총장 인선을 검찰 선에서 끝날 문제만으로 파악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행정부(법무부) 소속이지만 실질적인 업무는 행정과 사법의 영역에 걸쳐 있는 만큼, 사법부 전반에 대한 검토 역시 필요하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크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으로 구성된다. 검찰은 수행기능과 조직구성이 사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준사법기관으로 간주된다.

헌법은 헌법재판관을 9명으로 구성하도록 규정하는데 이중 대통령이 3명을 직접 임명하고, 대법원장과 국회가 지명한 각 3명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절차를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행사하는 인사는 6명인 셈이다. 여기에 여당이 지명하는 몫까지 따진다면 9명 중 7명 이상을 대통령 인사로 채우게 되는 것.

실제로 헌법재판관 9명 중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3명을 제외한 다른 재판관은 모두 여권 측의 지명으로 인선됐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문형배 재판관은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이석태 재판관은 민변 회장 출신으로 알려졌다.

헌재 뿐 만이 아니다. 14명으로 구성되는 대법관 중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해 9명을 문 대통령이 임명했다. 문제는 나머지 대법관 5명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4명도 이번 정권 내에 임기가 종료돼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수반으로 있는 행정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헌재와 대법원에 대한 인선이 마무리 되고 오롯이 남은 것은 입법부인 국회와 준사법기관인 검찰 뿐이었다.

그러나 적폐청산의 가도(街道)를 달려온 윤 후보자가 이번에 차기 총장으로 내정되고 19~23기 검사장들의 사퇴와 신임 검사장급 임선 등 뒤따를 태풍급 인사로 인해 일각에서는 사실상 사법장악 시도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윤 후보자를 낙점한 바로 다음날인 18일 현 수사권 조정안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송인택 울산지검장은 이미 사의를 표명했고, 윤 후보자와 함께 최종 후보군에 올랐던 봉욱 대검 차장검사도 20일 사의를 밝혔다.

<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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