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 영업익 12조원 달성한 날도 준법위 위원들과 1시간 면담
삼성 계열사, 단체교섭 돌입‥51년 무노조 경영 폐기 속도
준법 경영 성과 따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
사법리스크 줄일 열쇠‥“투자 안정성 어필 위해서도 중요”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삼성이 변하고 있다. 이재용 체제 들어 삼성은 과거와의 결별을 선언하듯 준법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동시에 노동 감수성을 높이고 있다. 

 

중심에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준법위)가 있다. 

 

준법위는 올해 2월 출범한 독립기구다. 지난해 12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에 불법행위 재발 방지를 위해 준법 경영 강화를 요구함에 따라 설립됐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등 삼성의 7개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이들 회사의 준법 경영을 들여다보고 있다. 준법에 입각한 지속가능한 경영 체계 수립과 노동 3권의 실질적 보장, 시민사회의 신뢰 회복을 위한 실천 방안을 충실히 수립하고 지키는지가 이들의 관심 대상이다. 

 

앞서 준법위는 경영권 승계와 노동, 시민사회 소통 등에 대한 이 부회장의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더욱 구체적으로 이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지난 6월에는 7개 계열사의 준법 준수 담당 임원으로부터 직접 이행방안을 보고받고 보완을 주문했다. 특히 노조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효적 절차 규정을 정비하고 산업안전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 등을 검토하라고 요청하는 한편, 시민사회와 협력해 구현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도 고민할 것을 당부했다. 7월에는 준법경영으로 체질개선에 성공한 독일 지멘스의 사례를 공유하고 7개 계열사 실무책임자를 포함해 준법감시를 강화할 수 있는 교육·홍보·조사 등을  논의했다. 

 

특히 50억이 넘는 내부거래는 반드시 준법위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고, 준법 경영 관련 신고·제보 처리방안도 논의하고 있는 만큼, 역할과 위상이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최고 경영자의 의지만이 준법 경영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게 준법위의 입장. 이에 따라 내년 초에는 7개 계열사 최고경영진(CEO)과 면담도 진행할 예정이다. 

 

준법위의 주문에 따라 삼성 계열사들도 속속 실효성 있는 준법 경영 방안을 내놓고 있다. 노동3권의 실효적 보장을 위해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노사 관계 자문그룹을 이사회 밑에 두고 삼성 임직원을 대상으로 노동 관련 준법 교육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사내 준법 준수침의 활동을 강화하고 노동·인권단체 인사를 초청한 강연을 진행한다. 시민사회 소통 전담자를 지정하고 시민단체 간담회, 사내 행사 초청 등을 통해 이해와 협력도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준법 경영 관련 법령·제도를 검토하고 해외 기업 사례를 연구하는 용역을 외부 전문기관에 발주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출범 초기 ‘면피용’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에 보란 듯이 준법위가 제 기능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준법위의 전문성이 큰 역할을 했지만, 삼성의 얼룩진 과거를 끊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이 부회장은 2018년 경영에 복귀한 이후, 과거 관행을 과감히 폐기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며 실천해나가고 있다. 미래전략실 해체,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들어 이 부회장의 ‘결별’ 의지를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했고, 8700여명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무려 11년간 이어진 반도체 라인 백혈병 분쟁도 매듭지었다. 해고노동자 김용희씨와도 복직에 합의했다. 국정감사 당시 삼성전자 임원이 기자 출입증을 갖고 국회를 드나든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임원의 사표를 즉각 수리하고, 특별 감사를 실시해 규정을 위반한 직원 2명을 징계 처분했다. 

 

51년 무노조 경영을 폐기하겠다는 약속 또한 차근히 실천하는 중이다.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 출신인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6월 초 삼성 사장단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고 삼성화재가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울산공장 노조, 삼성전자 사내 4개 노조 공동교섭단이 노조활동 보장 등을 위한 단체교섭에 들어갔다. 

 

특히 이 부회장의 준법 경영 행보에 대해 재계 안팎의 관심은 비상하다. 재계 맏형인 삼성의 투명경영은 재계 전반의 관행을 바꾸는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준법위의 성과는 이 부회장의 재판과도 직결된 문제인 만큼, 삼성의 사법리스크를 줄일 중요한 ‘열쇠’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8일 유럽 출장을 떠나기 전 위원들과 직접 만나 1시간 가량 면담하고 “지난번 대국민 사과에서 국민들께 약속한 부분은 반드시 지켜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날은 삼성전자가 12조원에 달하는 분기 영업이익을 발표한 날이자, 반도체 초미세 공정 경쟁에서 필수적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수주를 위해 현장 경영에 나선 날이었다. 이 부회장이 준법위 활동을 얼마나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난달 재개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은 내년 초 결론지어질 전망이다. 재판부는 준법위의 실효성을 점검해 이 부회장의 양형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준법위가 실효적으로 운영되는지 점검하고자 재판부와 특검,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이 1인씩 추천해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 김경수 전 대구고검장을 포함해 3명의 전문심리위원을 꾸린 상태다. 이들은 이달 말가지 준법위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다. 

준법위의 활동이 노동과 시민사회 소통, 반부패 등에서 가시적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받는다면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이 막 시작된 참이라 삼성으로서는 오너의 경영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다. 게다가 삼성을 둘러싼 시민사회의 비판이나 대외 신임도 하락 등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의 준법 경영이 더욱 속도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경영 전문가는 “삼성의 경우, 최고경영자 시스템을 도입해 정작시킨 상황이기 때문에 오너의 부재로 기업이 치명저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많지 않을수도 있다. 다만 장기적 투자에 대한 책임의 문제에선 오너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의 재판 결과에 따라 ‘속도전’에서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대외적 활동 역시 일정 부분 제약이 불가피한 것은 물론 해외 투자자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은 준법 경영에 대해 거듭 어필해 ‘삼성은 안정적으로 될 것’는 시그널을 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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