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 = 김봉주 기자]금융당국이 ‘역진성 해소’ 정책을 내세우며 카드사에 힘을 실어 줬지만 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카드업계의 카드수수료 인상안에 가맹계약 해지라는 초강수를 두며 인상안을 거부했고, 결국 카드업계는 현대차그룹의 합의안을 받아들었다. 시장은 이를 대형가맹점의 파워에 밀린 카드사의 ‘완패’라고 평가했다. 쌍용자동차와 대형마트, 통신사, 항공사 등 다른 대형가맹점들도 수수료 인상안에 ‘수용 불가’ 방침을 정했다. 금융당국이 뒤늦게 ‘형사고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쌍용차가 가맹점 계약 해지 입장을 통보하는 등 대형가맹점들은 콧방귀를 뀌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의 조치가 실효성이 없다고 시장이 평가하는 가운데 현대차 이후 다른 대형가맹점과 카드사의 협상에서 카드사가 승리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카드수수료 갈등 심화에 분열하는 카드사…시발점은 정부의 ‘역진성 해소’ 정책


일각에서 카드수수료 갈등은 결국 잘못된 정책이 부른 참사라는 금융전문가들의 평가도 나온다. 가맹점규모가 클수록 더 높은 수수료를 매겨야 한다는 ‘역진성 해소’ 정책이 부른 카드수수료 갈등은, 승자나 패자 없이 잘못된 정책이 가져온 ‘피해자’만 있다는 것이다.

3년마다 돌아오는 카드수수료 적격비용(원가) 재산정 기간을 앞두고 작년 중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한 카드수수료 인하는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카드업계는 수수료 인상이나 동결보다는 수수료를 우대(낮은 수수료율로 동결)해주는 대상이 얼마나 늘어날지, 기존 우대수수료율이 얼마나 떨어질지에 관심을 모았다.

반면 대형가맹점은 우대수수료에 대한 정부 고시인 적격비용 재산정작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카드사와 직접 계약하는 대형가맹점은 적격비용 재산정 작업에 대한 각종 논의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다 대형가맹점이 카드수수료와 관련한 논의에 들어오게 된 건 지난해 10월 11일이었다. 이날 금융위원회 최종구 위원장이 “(카드사가) 대형가맹점에 마케팅 비용을 상당히 쓰고 있다. (적격비용 재산정 시) 마케팅 비용구조를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라는 발언한 것이 역진성해소 정책의 시발점으로 보인다. 그러다 같은 달 26일 최 위원장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한국마트협회와 면담에서 대형마트가 중소상공인보다 낮은 수수료를 적용받는 건 불공정하다고 주장한 협회에 최 위원장은 “그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마케팅 비용 구조개선 등도 함께 개선하겠다”고 답변하면서 ‘역진성 해소’와 관련한 금융당국 정책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에 이어 11월26일 금융위는 역진성 해소를 골자로 한 카드수수료 종합개편안을 발표했다. 가맹점에 적용되는 수수료 부담 경감과 가맹점 간 부당한 수수료 격차 해소가 개편안의 핵심이다.

이 과정만 보면 카드사의 수수료 인상안이 정부정책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카드사와 대형사간의 갈등은 발생하지 않았어야 했다.

어설픈 정책
수수료 인상 논리는 있지만 정책 실행 방법은 없어


하지만 금융전문가들은 정부의 서투른 정책이 가져온 예상된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적격비용 산정방식을 개선해 대형가맹점 수수료를 인상하기 위한 논리는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 실행 방법은 부재중이라는 것이다. 현행법상 카드사는 적격비용 이상의 수수료를 받기만 하면 되는데, 카드수수료는 적격비용에다 카드사가 마진을 붙여 이뤄진다. 마진을 포기해도 상관 없다는 얘기다. 대형가맹점 수수료의 적격비용이 기존보다 올라도 마진을 줄이면 수수료는 내려갈 수도 있다. 카드업계에서 “대형가맹점과 협상은 마진 싸움”이라는 말이 도는 이유다.

최근 한달 동안 금융당국이 2차례에 걸쳐 대형가맹점에 경고를 보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현대차와 카드사 간 수수료 갈등이 고조되던 상황에서 전월 19일 언론 브리핑에서 “대형가맹점이 과도한 협상력에 의존해 카드수수료를 부당하게 인하해달라고 하는 건 처벌이 가능하다”며 1차경고를 보냈다. 갈등은 마무리됐지만 이후 다른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인상안 거부사태가 또다시 불거지자 금융위는 이달 19일 또 한번 브리핑을 열어 “협상이 완료된 대형가맹점의 카드수수료 적용실태 점검결과 위법사항 발견 시 법에 따라 조치하겠다”며 2차경고를 보냈다. 대형가맹점에 수수료 인상안 수용을 압박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카드업계는 ‘위법사항’이라는 기준이 없는데 무엇을 근거로 법에 따라 조치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당국이 형사처벌 조치를 검토중이라 했지만 현실적으론 계약 당사자인 카드사가 가맹점을 고발해야 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형가맹점이 마진을 포기하라고 하면 카드사로선 협상할 카드가 없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대형가맹점의 ‘부당한 인하 요구’라고 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나”라고 꼬집었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봉주 기자 seraxe@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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