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확실성 증폭…對日의존도 높은 공작기계·정밀화학·미래산업까지 타격 전망
日, 비전략물자 ‘캐치올 규제’ 가능성도…아픈 곳만 찌를까
터무니없는 對日 의존도…“0.001%로 25% 규제”
여야 일제히 일본 규탄, GSOMIA 파기 검토…文대통령 오후 임시 국무회의 주재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일본이 2일 전략물자 수출 우대 혜택 27개국 목록(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결정하며 양국의 안보는 물론 경제·산업 생태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이날 일본의 결정에 따라 수출 규제대상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불화수소·플루오린 폴리이미드·리지스트)에서 산업계 전반으로 확대되며 당분간 양국관계는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됐다.

이미 수출 등 한국의 대내외 경제가 지속적으로 ‘적신호’를 보내는 가운데 일본의 추가 규제로 대외 불확실성 증폭과 함께 한국 무역의 부진을 장기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될 전망이다.

업종별로는 지난달 1일 반도체·디스플레이와 함께 일본에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공작기계, 정밀화학 및 미래산업 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 물량 확보가 난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는 일제히 비상경영체제에 돌입, 신속한 대체수입처 발굴과 주력 부품의 국산화에 총력을 기울인다.

정부 또한 대외적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대(對)일본 대항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국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세제, 예산, 제도 등에서 단기적 대책부터 중장기적 대책까지 단계적으로 유의미한 대책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 왼쪽부터 이시이 게이이치 일본 국토교통상, 아베 신조 총리, 아소 다로 재무상이 2일 도쿄에서 열린 각료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일본 아베 내각은 이날 한국을 무역 우대국가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내려 주변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2019.08.02.


이르면 이달 말부터 혜택 못 받아…‘캐치올 규제’로 아픈 곳 집중 타격 가능성도

일본은 2일 오전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연서한 뒤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공포를 거쳐 21일 뒤 시행된다. 당장 이달 하순이나 내달 초부터 한국은 더 이상 일본의 ‘우방국’으로서의 특혜를 누리지 못하게 될 예정이다.

일본은 그동안 군수 전용가능성이 있는 전략물자를 수출할 경우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된 27개국을 ‘믿을 수 있는 우방국’으로 인정해 ‘매 번 개별허가’가 아닌 ‘3년마다 포괄허가’를 해왔다. 전략물자 1,100여 개 중 대상이 되는 품목은 기(旣)발표된 반도체 품목 3개를 포함해 857개다.

즉 이날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인해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되는 품목이 3개에서 857개로 대폭 늘어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별허가를 받는 데는 약 90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일본은 일정 품목이 ‘비전략물자’라도 대량살상무기(WMD)에 사용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면 또다시 무역을 제한할 수 있다.

이른바 ‘캐치올(Catch-All) 규제’로, 지난달 1일에도 일본은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며 한국이 재래식 무기에 대한 캐치올 규제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든 바 있다.

일본은 군사용으로 사용할 우려가 없다는 것이 입증되면 신속하게 허가를 내주겠다고 주장하지만, 지난달 1일 규제대상에 포함된 반도체 소재 3개에 대한 수출 허가가 한 달간 1건의 허가도 받지 못한 점으로 보면 사실상 한국의 수출길을 옥죄려는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반영된 7월 한 달 간 한국의 대일 수입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9.4%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비전략물자를 일일이 규제하는 것 보다 한국에 타격이 있을만한 업종을 골라 집중적으로 캐치올 규제를 적용시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소재들을 첫 타깃으로 삼은 것도 대일 의존도가 높은 해당 소재들이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점을 고려해 한국의 주력산업인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지난주 WTO 일반이사회에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일본 조치 대상이 된 3개 품목의 대한국 수출액이 일본 총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01%인데 한국 총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5%”라며 “일본의 조치는 자국의 0.001%를 이용해 이웃 나라의 25% 이익을 훼손하는 것”이라 전했다.

반도체 다음 규제 대상으로는 공작기계, 정밀화학 등 대일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나 한국이 미래산업으로 중점 투자하는 전기차, 정보통신기술(ICT) 등이 점쳐진다.

전기차 배터리인 파우치형 배터리를 감싸는 필름은 상당 부분 일본산에 의존하고 있는데다가 자동차나 선박 등에 필요한 기계 부품을 만드는 공작기계 또한 일본산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방직섬유, 석유, 석유·정밀화학, 차량·항공기·선박 등 48개 품목의 대일 수입의존도가 90%를 넘는다. 공작·정밀기계 등에서 일본산 부품 비중은 전체의 30~40%를 차지한다. 

 


지나치게 높은 對日의존도…활로 찾아 역공할 수 있나

한편 한국 수출은 지난해 12월 –1.7%를 기록하며 하락세로 전환한 이후 지난달 –11.0%를 찍으며 8개월 내내 역성장을 보였다.

대일 교역이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작지 않아 일본의 이번 조치로 인해 양국 무역관계가 경직될 경우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한일 무역 규모는 1965년 수교를 맺을 당시 2억 달러를 시작으로, 2018년 851억 달러까지 연평균 12.1%씩 성장했다.

한국에 있어 일본은 중국, 미국, 베트남, 홍콩에 이어 5위 수출국인 동시에 중국과 미국에 이어 3위 수입국이다. 일본에게 있어 한국은 3위의 무역 흑자국이다.

대한국 첫 수출규제 대상이던 반도체 소재 중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올해 1~5월 1,296만 달러를 수입했는데 이 중 일본산이 93.7%였고, 반도체 기판 제작에 감광제로 사용되는 리지스트는 91.9%가 일본산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세정에 사용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는 전체 6,479만 달러 중 중국산 수입이 3,003만 달러로 46.3%를 차지했지만, 일본산도 2,844만 달러(43.9%)로 비슷한 수준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일본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90% 이상인 품목이 48개에 달하고, 이들 품목의 대일 총 수입액은 27억8천만 달러라 전했다.

업종별 대일 의존도는 방직용 섬유 99.6%, 화학공업 또는 연관공업 생산품 98.4%, 차량·항공기·선박과 수송기기 관련 물품 97.7% 등으로 사실상 전량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일 의존도가 50% 이상인 품목도 253개, 대일 총 수입액은 158억5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소재 경쟁력 강화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 내에서는 한국이 대체수입처를 찾고, 국산화율을 높여 대일의존도를 낮추면 결국 화살은 일본 기업에 돌아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WTO제소와 함께 양자·다자 차원에서의 통상대응을 전개할 것이며 조기물량 확보, 대체수입처 발굴, 핵심부품·소재·장비기술 개발 등을 위해 범부처 가용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라 밝혔다.


▲ 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일본수출규제 관련 상황점검회의를 시작하기 앞서 관계 부처 장관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이낙연 국무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 조세영 외교부 1차관, 노영민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상조 정책실장, 강기정 정무수석, 윤도한 국민소통수석, 이호승 경제수석,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참석했다. 2019.08.01.

與野 일제히 일본 규탄…GSOMIA 언급부터 ‘1965 한일협정’ 청산 목소리까지

여야는 잇달아 일본의 추가 경제보복 조치를 성토했다. 일각에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재검토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맞대응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일본이 한국을 믿을 수 없는 이웃으로 규정한 이상 우리도 일본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양국 간 신뢰를 바탕으로 각국 정보를 공유하는 관계인데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면 그런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강조했다.

박찬대 원내대변인도 “일본은 정치외교 문제를 통상보복으로 접근했다”며 “한국에 대한 도전힐 뿐 아니라 자유롭고 공정하며 차별 없는 세계 자유무역 체제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평화와 번영의 파트너십을 약속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일일뿐더러 동북아 평화공동체 건설을 방해하는 일”이라며 “양국 무역분쟁은 공멸의 길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비상 상무위원회에서 심상정 대표, 윤소하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정령(시행령) 개정안을 통과하자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8.02.

정의당은 일본 각의 의결 발표 직후 비상상무위원회를 열고 가장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심상정 대표는 이날 일본 결정에 대해 “4차 산업혁명 기술전쟁에서 한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의도”라며 “아베 정권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며 대한민국을 도발하는 최종 목적지는 전쟁수행이 가능한 ‘보통국가’ 일본의 부활”이라 질타했다.

이어 심 대표는 △한일 GSOMIA 파기 △대통령 직속 ‘65체제 청산위원회’ 설치 등을 촉구하며 대외의존적 경제구조 개혁과 새로운 산업 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일본의 추가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생중계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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