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2019.09.09.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장님은 시각에 대한 관념을 갖지 못하고 귀머거리는 소리에 대한 관념을 갖지 못한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인간이 오감(五感)의 ‘경험’을 통해 사고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무지(無知)의 영역에 있던 어떤 대상이나 사안의 처음 접했을 때 최초로 드는 생각이 곧 감정이며 여기에 이성이 기여하는 바는 없다는 것이다. 흄이 그의 저서 ‘인간 오성 탐구’에서 “이성은 감성의 노예이며 그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개인은 모여서 가족을 이루고, 가족이 모여서 씨족·부족을 이루며, 이러한 집단들이 모여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수많은 인구를 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법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이 반영된 소산물이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특히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지만 도덕적·윤리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법학에서는 이를 ‘조리(條理)’의 문제로 본다. 법률 규정이 없다면 사회통념, 일반상식 선에서 비춰보자는 것이다.

최근 한 달 간 정국은 ‘조국 이슈’로 소용돌이쳤다. 사모펀드, 웅동학원, 딸 입시 등 특혜 의혹이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제기된 주요 의혹이었다.

여론과 야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조 후보자를 법무장관으로 임명하며 “후보자 본인이 책임질 위법행위가 없음에도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장관도 딸 입시특혜 등 의혹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리얼미터가 10일 발표한 조사에서 조 장관 임명에 대한 긍정평가는 46.6%인 반면, 부정평가는 49.6%였다(조사날짜9일, 대상501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p). 심지어 조 장관 임명 직후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문재인 탄핵’이라는 실시간 검색어까지 등장하며 레임덕을 자초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지명부터 임명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강수(强手)가 초래할 여론의 향후 동향에 대해 짚어봤다.

지지층 이탈 감수하면서까지 ‘조국’이라야 했나


진보진영조차 높은 반대 여론…지지층 굳히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개각 대상으로 소위 ‘文의 남자’로 불리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국은 순식간에 과열됐다.

특히 조 장관의 재산내역 등이 담긴 인사청문요청안이 국회에 제출되며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단독보도를 쏟아냈다. 3주 동안에만 75만 건의 조국 의혹 기사가 나왔다고 한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조국 비호’에 여념이 없었다. 셀 수도 없이 쏟아지던 수많은 의혹들 중 조 장관 본인에게 제기된 의혹은 없다는 것이 그나마 여권으로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일 터였다.

하지만 다름 아닌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목됐던 조 장관 일가에 위법 의혹이 일었다는 점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쉽사리 공감대를 얻지 못했던 것 같다.

지난달 말부터 리얼미터가 5차례에 걸쳐 조사한 조 장관 임명 찬반 여론에서 찬성 여론은 단 한 번도 반대 여론을 앞서지 못했다. 특히 자신을 진보성향이라 인식하는 대상자들 중에서도 35.6%가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중도층에서 두드러진 이탈이 나타난 점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5차 여론조사 기준, 조사날짜8일, 대상503명, 표본오차95%신뢰수준±4.4%p).

문 대통령이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조 장관을 임명한 데는 사법개혁 의지와 별도로 이 같은 ‘핵심 지지층’ 굳히기에 들어간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10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살을 뺄 때 의도대로 뱃살이 빠지면 좋은 다이어트가 되지만 다른 살이 빠지면 원하지 않는 체형이 된다”며 “(대통령의 조 장관) 임명으로 인해 관망하던 중도층이 빠질 수도 있는데 대통령께서 코어(핵심) 지지층을 안고 가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굳이 ‘조국’이라야 하는가

문 대통령의 권력기관 개혁 의지는 이번에도 강조됐다. 한국에서 누리는 검찰 권한이 여타 어느 국가보다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부분은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만큼, 분명 개선돼야 할 현 정부의 ‘짐’이다.

하지만 그 과제가 과연 과반을 넘는 여론의 반대를 정면돌파하는 것도 모자라 ‘조국’이라야만 가능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이미 국회에서는 지난4월 검찰개혁 핵심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랐다.

일반적인 법안 발의가 아닌 패스트트랙에 오른 이상 해당 법안은 반드시 본회의에 상정된다. 아무리 기일을 늦게 잡아도 330일 내에 본회의에 상정되도록 정한 것이 국회법 제85조의2에 규정된 신속처리안건, 즉 패스트트랙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의 논의는 물론 본회의 절차는 전적으로 ‘의회의 시간’이다. 장관은 물론 대통령조차도 의결·표결에 참여할 수 없다. 결정 자체가 의회에서 진행되는 만큼 굳이 ‘조국’이라야 할 필요도 없다.

물론 법사위에서의 논의 과정에 법무장관이 참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미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이 있음에도 ‘꼭 조국이라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에 여권은 아직 답이 없다. 

 

 

黨·政·靑 vs 檢…야권 결집 속 뿔난 민심


검찰과의 대립

한편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 장관 의혹 관계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붙은 ‘정치개입’이라는 딱지가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은 최근 대검찰청 간부들과의 점심식사 중 “나는 정치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며 “검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은 부패한 것과 같다. 중립을 지키며 본분에 맞는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에서 시작된 ‘정치검찰’ 공세가 청와대와 정부로까지 확장되자 검찰은 ‘수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임명한 것은 지난 7월. 취임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당정청과 검찰이 특정 인물에 대한 수사를 두고 충돌한 것은 이례적이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강조하던 개혁 대상 권력기관이 검찰이라는 점이다.

윤 총장은 인사청문회 당시 검찰개혁에 대해 “해당 논의가 이미 입법 과정에 있고, 최종 결정은 국민과 국회의 권한임을 잘 알고 있다. 검찰은 제도의 설계자가 아니라 충실한 집행자”라며 “검찰은 국회의 논의과정에서 형사법집행의 전문성과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국민 관점에서 겸허히 의견을 드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집행자로서의 역할을 상기하면서 제언을 드린다는 윤 총장의 말은 검찰개혁 논의를 국회와 국민에 맡기겠다는 것으로, 정치적 판단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최근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 검찰과 대립각을 세운다는 것은 이미 마음 한 켠에 ‘말 안 듣는 검찰’, ‘적폐검찰’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충분한 대화와 타협을 매개로 하지 않은 강제적인 개혁·혁신은 조직적 저항과 이탈을 불러일으킨다. 설사 진정 개혁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경우라도 이는 변하지 않는다.

조광조의 개혁이 그랬고, 김옥균 일파의 갑신정변이 그랬다. 미국의 남북 전쟁은 노예제 유지를 주장한 남부와 철폐를 주장하던 북부 간에 벌어진 내전이었다. 분단 초 북한의 사회주의식 토지개혁(무상몰수·무상분배)에 반발한 지주들은 대거 월남했다.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 밑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을 한 박인숙 의원(오른쪽), 김숙향 동작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과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9.11.

조국 임명에 무리수 둔 文정부…野는 장외서 對與투쟁
하반기 경기예상지표는 계속해서 적신호를 보내는 가운데 세수는 줄고,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향 조정되고 있다.

대외적 여건도 좋지 않다. 가시적 효과가 나타나진 않았지만 일본과의 무역전쟁은 이제 막 시동이 걸린 상태고, 문 대통령이 그토록 매달렸던 북한은 남측과 대화를 거부한 채 미국에 ‘구애의 편지’를 보내고 있다. 또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으로 거듭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의 경제여건은 정권 지지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경우 분단의 특수성으로 인해 북한 및 한미관계 또한 지지율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문 대통령이 조 장관을 법무장관 후보자로 내정하기 전인 지난달 6~8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9일 발표)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평가 이유는 경제·민생문제 34%, 외교문제 21%, 북한문제 12% 순으로 나타났다(조사날짜8월6~8일, 대상1,009명,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그러나 조 장관의 청문회 전인 지난 3~5일 조사(6일 발표)에서는 경제·민생문제 22%의 뒤를 이어 인사문제가 21%까지 올랐다(조사날짜3~5일, 대상1,002명,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조 장관 지명을 전후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부정평가는 급격히 역전되며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났다. 가장 최근(9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문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에서는 여전히 부정이 긍정을 앞서고 있다.

이처럼 민심 이반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시점에서 조 장관의 임명 강행은 레임덕을 가속화 할 것이라 평가받고 있다. 납득할 수 없는 인사 정책으로 인한 지지층의 이탈이 우려되는 셈이다.

자유한국당은 바른미래당과 사실상 대여(對與) 연대를 결성한 상태다. 여기에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국민연대까지 제안하고 나섰다. 조 장관에 대한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전국적인 대정부투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脫기득권 기치 속 ‘그들만의 리그’
‘타락의 온상’으로 기억된 박근혜 정부를 탄핵시키고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전보다는 나을 것이란 기대를 받들며 집권한 ‘촛불 정부’의 원칙은 조 장관 임명을 기점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 실망하며 문 정부에 걸었던 청년들과 학부모들, 소외계층의 기대는 ‘공정의 배신’으로 다가왔다.

특히나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녀 교육 등 입시특혜 의혹은 역린을 건드린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던 문 대통령과 조 장관의 발언은 변호사로서, 법학자로서 검찰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까지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이성적인 면만을 고려하지 않는다.

흄이 지적했듯이 인간에게 감정적인 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나 장관과 같은 고위 공직자의 임명에서 설령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 해도, 제기된 의혹들에 조리(條理) 상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함은 당연지사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신뢰의 붕괴는 쉽게 냉소와 환멸, 증오로 이어진다.

20대 청년들은 자발적인 집회를 열었다. 짐작은 했지만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던 세계였다. 부정하고 싶던 ‘그들만의 리그’였다. 이들은 정의를 부르짖던 강남좌파의 ‘드러난 속살’을 보고 허망함을 느꼈다.

사회에 만연한 특권과 반칙 등의 타파를 통해 탈 기득권 사회를 이룩하자는 기치는 문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오던 내용이었다. 그러나 강남좌파로부터 흔들린 기회의 공정에 배신당한 국민 여론이 앞으로도 이를 용납할지는 불투명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