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 유언장 놓고 가족 간 법정 공방
청원게시판 올라온 삼남매 골육상쟁
현대카드 IPO 감감무소식…좌초될라 우려
내년 3월 임기 만료…최악의 리더십 위기

▲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제공=정태영 부회장 페이스북)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두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어머니가 남긴 상속재산 10억원 중 법에서 보장한 자기 몫을 돌려달라는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이다. 정 부회장과 두 동생은 유언효력 확인 소송,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정 부회장의 여동생 정은미씨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정 부회장의 갑질경영을 폭로하면서 드러난 삼남매간 갈등이 막장극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현대카드의 기업공개(IPO) 일정이 기약 없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그룹 오너 일가인 정 회장이 가족문제로 논란을 자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내 몫 돌려 달라”…동생들 상대 유산 소송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태영 부회장은 지난달 7일 동생 정해승씨와 정은미씨를 상대로 약 2억원 규모의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유류분은 상속 재산 가운데 상속을 받은 사람이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일정한 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반드시 남겨 두어야 할 일정 부분을 말한다. 특정 상속인이 유산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유류분을 규정해 유언보다 우선해 보장하도록 명시한 것이다.

이번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은 정 부회장이 어머니의 유언장을 두고 벌인 소송 1심에서 패소한 결과로 제기된 일종의 후속조치다. 정 부회장의 모친이자 종로학원 설립자인 조모씨는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 중이던 2018년 3월 서울 종로구 동숭동 일부 부동산과 예금자산 10억원을 정해승·정은미씨에게 남긴다는 자필 유언장을 남겼다. 장남인 정 부회장과 남편 정경진 원장은 상속에서 제외됐다.

정 부회장과 부친 측은 “유언증서 필체가 조씨 필체와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유언장 작성 무렵 조씨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며 “정상적인 인지능력이 없던 상태에서 유언증서가 작성됐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두 동생은 법원에 유언증서 검인 절차를 신청했다. 이에 법원은 지난달 조씨의 유언장에 효력이 있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망인의 유언증서에 의한 유언은 민법이 정한 자필증서 유언으로써 법정요건을 갖춘 것으로써 유효하다”며 “정 부회장 등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조씨가 유언증서 작성 당시 의사능력이 희박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상속재산이 유언대로 동생들에게 돌아가자 정 부회장은 부친과 함께 법적으로 상속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류분 반환 청구를 제기했다. 원고 소가(원고가 승소 시 받을 수 있는 금액)는 2억100원이다. 합의부 사건 최소금액이 2억원 초과인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이 같은 행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승소한다고 해도 실제 유류분은 수천만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돈 때문에 제기된 소송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정 부회장 측은 유류분반환청구소송 승소 시 받게 될 유산 전액을 부친이 설립해 운영 중인 ‘용문장학회’에 기부할 것으로 알렸다.

유산·지분 놓고 2년간 법정 공방
정 부회장 남매간 법정공방은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상속재산 분쟁은 해묵은 갈등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정 부회장과 두 동생 간에 서울PMC(옛 종로학원) 지분 분쟁을 비롯해 유언효력 확인 소송,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다수의 법정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삼남매간 갈등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동생 정은미씨가 청와대 게시판에 정 부회장의 갑질 경영을 폭로하면서 부터다. 정 씨는 지난해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서울PMC의 대주주인 정태영 부회장의 갑질경영을 막아달라는 내용의 청원글을 올렸다. 한 달 뒤에는 ‘대주주의 전횡에 소용없는 소수주주 보호법, 장부열람청구건에 대해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거듭 올렸다.  

 

▲ 정태영 부회장의 동생 정은미씨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린 청원글


정씨는 청원글에서 과거 대입준비학원이었던 종로학원이 학원사업을 매각하고 현재 서울PMC로 명칭을 변경하기 까지 대주주인 정 부회장이 불법적인 갑질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정태영 부회장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오빠라는 이유로 제 지분을 매각하거나 가족들 명의의 차명계좌를 통해 회사의 자금을 운용해 자신의 지분을 늘렸다”며 “그 결과 다른 어떤 주주의 동의 없이도 회사의 정관변경부터 이사 감사 선임까지, 회사와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을 아무 견제없이 독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PMC는 학원사업을 매각한 후 보유한 부동산의 임대사업만을 하고 있다. 원 사업목적이 종료했으므로 잔여재산을 주주에게 분배하고 해산해야한다는 것이 정씨 주장이지만, 대주주인 정 부회장은 신규 사업을 하겠다고 정관을 개정한 상태다.

동생 정씨는 “신규사업이라는 것은 학원사업이나 금융이 아닌 친환경 농산물의 재배, 판매다”라며 “요구한 신규사업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는 단 1장의 자료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유한 부동산을 매각한 거액의 현금을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에 불과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동생 정씨는 2018년 서울PMC를 상대로 ‘회계장부 열람 및 등사’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소한 상태다. 정씨는 “어이없게도 장부열람 소송 2심에서도 패소하고 말았다”며 “회사의 장부를 1개도 열어 볼 수 없는 소수주주인 저는 어떻게 그 철통같이 무장돼있는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대주주 전횡의 진실을 알아 낼 수 있을까”라며 “그런데 또 법원은 장부열람의 필요성을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로 구체적으로 소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부열람청구를 기각한다고 한다”며 하소연했다.

기업공개 발목 잡는 오너리스크
정 부회장 측은 동생 정씨가 정태영 부회장과 서울PMC의 명예와 신용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며 맞섰다. 당시 현대카드 측은 “해당 청원은 정 부회장 동생의 일방적 주장으로 사실이 아닌 내용도 포함돼 있다”며 “이와 관련해 1심 판결이 나왔고 원고가 제기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판결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판단은 법원에서 하겠지만, 문제는 정 부회장의 가족 분쟁이 기업공개를 앞둔 현대카드 입장에서 오너리스크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동생 정씨의 청원글이 알려진 이후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평소 SNS를 통해 소통을 활발하게 해온 정 부회장의 유명세도 한몫했다. 오너로서 리더십이 도마에 올랐다. ‘업계 연봉킹’, ‘현대가 둘째사위’, ‘캥거루 경영인’ 등 정 부회장을 수식하는 말들도 거듭 회자됐다. 카드업계 유일한 오너경영자로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 현대카드는 지난해 10월 기업공개 계획을 밝히고 한 달 뒤 NH투자증권과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대표주관사로, 한국투자증권을 공동주관사로 선정했다.(사진제공=현대카드)

한때 의욕적으로 추진됐던 현대카드 기업공개가 감감무소식이 되면서 정 부회장의 리더십에 의문부호가 더해지고 있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10월 기업공개 계획을 밝히고 한 달 뒤 NH투자증권과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대표주관사로, 한국투자증권을 공동주관사로 선정했다. 당초 현대카드는 2020년 초에 기업공개 절차를 본격화하기로 했지만,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며 급제동이 걸렸다.

다만 정 부회장은 코로나 이전부터 상장 일정을 미루고 싶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더 유리한 기업 가치를 받기 위해 상장을 2021년까지 미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드업계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무리하게 기업공개를 추진하기 보다는 기업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시기를 찾고 싶다는 의미로 읽힌다.

정 부회장이 상장을 서두르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상장 추진 자체가 자의라기보다는 재무적투자자(FI)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카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카드의 최대주주는 현대자동차로 지분 36.99%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현대커머설이 24.54%, 기아자동차가 11.48%의 지분을 소유 중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가 보유하고 있던 현대카드 지분 24%는 지난 2017년 홍콩 소재 사모펀드 운용사 어피니티웨쿼티파트너스를 비롯해 싱가포르투자청, 알프인베스트파트너스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들였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지분 인수 당시 기업공개를 조건으로 내걸었을 가능성이 크다. 통상 사모펀드의 자금 회수 기간이 3~5년이라는 점에서 2021년이 상장의 마지노선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시장에서는 현대카드의 상장 가능성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재무적투자자들이 원하는 기업가치가 2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하락세가 뚜렷한 카드업계 업황을 고려할 때 공모가격이 높을 수 없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최악은 공모 가격이 재무적투자자들의 예상치에 미달해 공모 자체가 좌초되는 경우다. 일례로 교보생명이 동일한 재무적투자자에 의해 기업공개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해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서 중재 절차를 밟고 있다.

임기 만료 앞두고 리더십 위기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대카드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PLCC 제휴 파트너와 해외 투자를 늘리고,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는 등 전략을 다각화하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비록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36.5% 늘어난 1662억원의 순익을 기록하는 등 깜짝 실적을 거뒀지만, 신한카드·삼성카드·KB국민카드 등 톱3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현대카드는 2017년 KB국민카드에 3위 자리를 내준 이래 좀처럼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감각적 디자인 도입과 슈퍼 콘서트 개최 등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한때 돌풍을 일으켰던 ‘정태영 매직’도 이제는 힘을 다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정 부회장의 현대카드 대표이사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된다.

재계 관계자는 “2003년부터 현대카드를 이끌어온 정 부회장의 임기가 그대로 만료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면서도 “공개 논란이 지속되면서 정 부회장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워 보인다”고 말했다.

 

스페셜경제 / 윤성균 기자 friendtolife@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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