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개발·생산 다하겠다’는 미국…한국 업계에 부담되나

변윤재 기자 / 기사승인 : 2020-09-28 10:59:15
미 상무부 “SMIC 수출, 용납할 수 없는 위험…수출 시 면허 취득”
미 연방의회, 자국 반도체 생산·기술 개발에 29조 지원 법안 추진
첨단 기술력 제고·국내 생산망 강화로 삼성전자·TSMC 등 견제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철저히 무너트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셍산(파운드리) 업체 SMIC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한 것이다. 

 

지난 15일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이자 중국 굴지의 IT기업 화웨이에 대한 모든 반도체 공급을 막은 데 이어 파운드리업체인 SMIC까지 정조준하며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업계 숨통 끊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를 비롯해 첨단산업 분야에서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애국소비가 강한 중국은 내수가 탄탄하다. 제2, 3의 화웨이가 탄생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미국 업체들에 가장 강력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에 자국 IT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아예 싹을 자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반도체 자국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 투입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26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최근 미국의 컴퓨터칩 제조회사들에게 서한을 보내 SMIC에게 특정 기술을 수출할 경우 별도의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고 통지했다. 미 상무부는 이 서한에서 “SMIC 또는 그 자회사에 대한 수출은 중국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SMIC에 수출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대상에는 반도체 부품과 장비, 소프트웨어 등이 포함된다. 앞서 미 상무부는 화웨이와 ZTE, 이들 기업의 계열사 등 275개 이상의 중국 기업에 대해 반도체 수출 규제를 단행해 이미 반도체 핵심부품과 장비, 소프트웨어에 대한 공급이 끊긴 상태다. 

 

그러나 미국 정부 더욱 극적인 효과를 노렸다. 사실상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세계 반도체 장비 상위 3곳이 미국 업체다.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17.27%)와 램리서치(13.4%), KLA-텐코(5.19%)의 점유율을 합치면 전체 반도체 장비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번 조치로 이들 업체는 SMIC에 반도체 장비 공급을 할 수 없게 됐다. 자국 업체들이 다소 영향을 받더라도 중국 반도체 업계를 고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드러낸 것이다. 

 

SMIC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다.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에 따르면, 2분기 기준 세계 시장 점유율은 4.8%로, 세계 5위다. 현재 점유율은 낮지만,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가파르게 성장했다.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를 목표로 SMIC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에 국가집적회로(IC)산업투자펀드와 상하이집적회로펀드로부터 총 22억5000만달러(약 2조6437억원)을 투자받은 데 이어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 관리위원회와 합작법인 설립, 10년 간 법인세 면제 등의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 화웨이 역시 대만 TSMC에 발주했던 주문을 SMIC에 돌렸다. 

 

SMIC는 이같은 지원을 바탕으로 첨단 기술력 강화에 나설 계획이었다. 올해 말까지 현재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을 공정을 7나노까지 끌어올리고 내년 말에는 본격적인 양산에 나설 예정이었다. 현재 7나노 이하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는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두 곳 뿐이다. 만약 SMIC가 7나노 공정에 성공한다면 5나노 공정에 들어간 두 업체와의 기술 격차는 2년 안팎으로 좁혀지게 된다. 

 

중국은 기술력에서는 뒤쳐져 있지만, 생산능력에서는 미국을 앞질렀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분석에 의하면, 미국의 반도체 시장 세계 점유율은 47%로 한국(19%), 일본·유럽(10%), 대만(6%), 중국(5%)으로 크게 앞섰다. 그러나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반도체 생산능력 집계는 상반된다. 미국은 중국(15%)에 3%포인트로 뒤진다. 중국은 2030년 세계 반도체 생산시장 점유율을 24%로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설계와 개발만을 하는 팹리스가 많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나 퀄컴 등은 생산은 대만이나 한국에 맡겨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자력으로 스마트폰과 5G(5세대) 통신장비를 비롯해 최첨단 기술의 개발부터 생산이 모두 가능해지면 미국의 디지털 패권은 흔들리게 된다. 미리 중국의 미세공정 개발에 제동을 걸어 기술력 향상과 생산능력 증대를 막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미국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소프트웨어나 부품·장비 공급이 막히게 되면 SMIC의 공급망을 교란시켜 중국 스마트폰은 물론 5G 기지, 미사일 유도장치 등 개발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국내 업체에 반사이익이 돌아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중국 파운드리 업체의 수요를 삼성전자, DB하이텍, SK하이닉스시스템IC 등이 흡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TSMC는 이미 애플, AMD 등 기존 고객사의 물량으로 추가 수주가 여의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충북 청주공장에 있는 파운드리 설비를 중국 우시로 이전, 올 연말부터 본격 양산에 나설 예정이라는 점에서 반사이익을 톡톡히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김경민 하나금융그룹 연구원은 “SMIC가 엔티티리스트(미 상무부의 거래제한 명단)에 포함된다면 미국 기업들은 SMIC에 제품을 공급할 때 별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중국 SMIC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한국 파운드리에 호재”라고 밝혔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도 “중국 팹리스 업체들은 SMIC 제재 가능성에 따라 향후 재고 확보 차원에서 해외 파운드리 업체에 긴급 주문을 넣을 수 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업체들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봤다. 

 

장기적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에 계속 호재가 될 진 미지수다. 수익률이 높은 분야의 주도권을 미국이 호락호락 넘겨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도체의 해외 생산을 낮추고 자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음 계획까지 세워놨다. 닛케이에 의하면 미 연방의회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총250억달러(약 29조40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투입하는 내용을 담은 초당파 상하 양원 일원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이나 연구시설을 지을 경우 건당 최대 3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총 150억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10년간 운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반도체 생산과 관련해 국방부가 50억달러를 지원하고, 미세공정 등 기술 개발을 위해서도 50억달러를 추가로 지원한다. 

 

닛케이는 “시장주의 경제인 미국은 지금까지 특정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는 데 신중했다”며 “공장 건설 등에 보조금을 직접 투입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생산의 해외 의존도를 대폭 낮추고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주도하는 미세공정 분야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속내가 읽히는 대목이다. 

 

다만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보조금 투입이 부당한 조치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공장을 건설 중인 해외 기업에게도 혜택을 준다는 계획이라는 점에서, 국내 업체들의 미국 내 투자 압박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TSMC는 지난 5월 12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었다. 삼성전자도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파운드리 공장 증설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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