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시인 (사진제공=인천문인협회)

 

[스페셜경제=이진경 시인] 처서가 지났지만 8월 햇볕은 아직 강렬하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앞두고 인천광역시 연수구 함박마을 탐방에 나섰다. 지역사회에 대해 참 무심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곳의 즐비한 상점들 간판이 이국적인데다가 무리지어 다니는 청소년들의 러시아어 수다가 낯선 환경으로 느껴졌다. 함박마을에 있는 고려문화원을 방문하니 프로그램을 위한 대상자로서의 고려인들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고려인들 스스로 참여자로서 활동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었다. 


한글 교육과 한국문화이해 등이 진행되는 강의실에는 여기저기에서 후원해준 물품들로 각기 다른 집기류가 다양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네 삶에서 지역사회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는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부터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획된 사회복지정책이 집행되는 곳, 모든 복지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존재하는 현장이 바로 지역사회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 대해 사회학자 워렌(Warren)은 ‘사회통합’이라는 용어대신 ‘사회참여(social particip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지역사회가 제공하는 제반 활동에 그 구성원들을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에 맞게 고려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함박마을 속 고려문화원 현장이었다.

자유민주사회에서 참여는 주민들 스스로 법 준수와 다양한 문화, 관습 존중부터 시작하는 것이 다. 여기에 평등한 자격으로 지역사회의 활동에 기꺼이 참여한다면 상호 안정적인 사회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현재 인천지역의 함박마을 고려인들은 4,500여명정도 집단을 형성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인천공항이 가까운 이점과 남동공단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지리적 입지가 좋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약자인 고려인들 원룸입주는 한 달분의 월세만 보증금으로 넣으면 바로 거주가 가능한 조건이 많아 부담 없는 지역이 됐다.

사실 고려인 동포들에 대한 전국적인 차원의 거주실태조사 조차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통계치도 없는 실정이다. 급작스러운 고려인의 대량 유입에 현주민들의 당황스러움은 시정부에서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고려인들 또한 대한민국 거주 선택 순간부터 지역사회 참여의 의미를 깊이 새겨 화합을 위한 주민으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연해주로 간 고려인들은 구한말 먹고 살 수 없어서, 일제의 수탈과 억압을 피해서 조국을 떠나야 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 속 동포들이다. 연해주 개척 초기에 필요했던 고려인들의 성실한 노동력을 이용하고는 어느 날 갑자기 ‘와곤(Wagon)’이라 불리는 단층식 화물칸이나 가축용 운송칸에 태워져 가을에 떠나 겨울에 도착한 곳이 중앙아시아였다고 한다. 농업지대로 바꾸려던 구 소련의 의도와 맞물려 일본견제에 대한 피해자로 고려인들은 또다시 불모지에 버려진 삶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토굴을 파서 생활하고 꽁꽁 언 땅을 손끝으로 파헤치고 농사를 지으며 적응해 나간 것이다.

이러한 비극적 사건이 일어 난지 80여년이 지났고 그 역사의 트라우마를 겪었던 동포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모국인 대한민국을 이어주었다. 후손들은 고려언어(한국말)를 잃어 소통이 어렵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뿌리를 찾아 왔고, 일자리를 찾았고, 빵을 굽고, 음식점을 운영하며 인천시민의 한 사람으로 세금을 내며 살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 고려인들이 구한말 19세기에 집단이민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동포들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의 20년 전 법규는 재외동포 인정이 동포 3세까지만 되었으나 다행히 2019년 부모를 따라 들어온 고려인 4세까지 동포로 인정이 되어 부모와의 생이별은 없게 됐다.

이제 지역공동체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며 지역사회는 다문화사회로 가는 새로운 변화를 알아야한다. 다양한 인종, 종교 그리고 이익집단에 대해 배타적이기보다 수용적인 인식의 확대가 절실하다. 불균형과 갈등을 최소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고려인 동포는 물론 다양한 이주의 배경인들과 지역사회 주민들 스스로 사회의 법규 준수는 물론 다양성과 소통하는 시작이 지역사회의 참여임을 느끼고 실천해야 한다. 함박마을 탐방으로 러시아 음식을 나누며 블라디보스톡을 작게나마 볼 수 있는 인천지역사회의 다문화 호기심으로 설레는 하루를 보냈다.

 

스페셜경제 / 이진경 시인 speconomy@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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