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장일치로 추인된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새누리당 제6차 전국위원회에 참석하여 서청원(왼쪽부터), 이인제, 정우택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친박 맏형인 서청원 의원 간의 갈등양상이 달아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친박계를 향해 강도 높은 인적청산을 주문한 인 위원장에 맞서 서 의원이 소속 의원들 전원에게 서한을 보내 인 위원장을 비판하고 나서자, 인 위원장은 ‘무례하다’며 서 의원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인 위원장과 서 의원이 신경전을 넘어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면서 인적쇄신을 위한 진통이라기보다 새누리당이 위기를 자처하고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친박 수뇌부 겨냥한 인명진의 칼날


정우택 원내대표의 선출로 이정현 지도부 체제가 일괄 사퇴하면서 새누리당 신임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된 인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박근혜 정부에서 호가호위 한 핵심 친박계를 대상으로 오는 6일까지 탈당을 주문하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인 위원장이 지목한 인적청산 대상으로는 전임 당 대표였던 이정현 전 대표와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지냈던 서청원·조원진·이장우 의원,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지낸 최경환 의원, 총선 당시 김무성 대표를 향한 막말 녹취록 파문을 일으킨 윤상현 의원, 촛불정국에서 ‘바람 불면 촛불을 꺼진다’는 발언으로 국민적 반감을 불러일으킨 김진태 의원 등이 꼽혔다.


이와 같이 인 위원장이 이들을 향해 자의적 탈당을 촉구하자, 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조원진 의원 등 친박 수뇌부를 포함한 10여명은 지난 1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회동을 갖고 인 위원장의 탈당 촉구에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정권 실세 부총리였던 최경환 의원의 경우 지난 2일 오전 대구시당·경북도당 신년교례회에서 “국민들이 이제 그만 됐다고 할 때까지 반성하겠다”면서도 “마지막 1인이 남을 때까지 새누리당을 지킬 것”이라고 말해, 탈당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친박 맏형의 반발


막후에서 친박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맏형 서청원 의원도 이날 오후 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서한을 보내 “임기도 3년 넘게 남은 국회의원들을 절차도 무시한 채 인위적으로 몰아내는 것은 올바른 쇄신의 길이 아니다”라며 강력 반발했다.


서 의원은 “당이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분열과 배제를 통해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냐”면서 “국민이 바라는 정치 혁신의 전제는 또 다른 독선과 독주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라며 인 위원장의 인적청산을 독선이라 꼬집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 “최순실 사태로 정부와 여당이 풍비박산이 났는데, 청와대 안방에서 일어난 일을 알 수는 없지만, 여당의 최고 맏형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무엇이 당과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하겠다”며 사실상 인 위원장이 주문한 즉각적 탈당을 거부했다.


“정치고 나발이고 사람이 된 다음에 정치를 해야지”


이와 같이 친박 수뇌부로 꼽히는 이들이 즉각적인 탈당을 거부하자, 3일 당무에 복귀한 인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친박 수뇌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인 위원장은 특히 친박 맏형을 향해 “당 대표에 대해 무례한 일이고 인간 인명진에 대한 무례한 일”이라며 “내가 평생 살아온 것으로 보나, 민주화 운동을 한 역사로 보난 서 의원이 나에게 그렇게 무례하면 안 된다. 예의를 갖춰야 한다”며 당 소속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자신을 비판한 행태를 지적했다.


서 의원이 자신을 보고 독선적이라고 평가한데 대해서도 “뭐가 독선적이냐”며 “스스로 책임 있는 사람들이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자기들도 사람 만나고 여론을 볼 텐데 스스로 결정해 책임을 지라는 게 독선이냐”고 맞받아쳤다.


인 위원장은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을 당했는데, 일본 같으면 할복한다”며 책임지지 않은 친박들의 무책임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을 봐서 뭔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그게 사람 아니냐, 그런 염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인 위원장은 또 “박 대통령이 직을 잃게 됐는데 그분을 따라다닌 사람들이 뭐하나, 나 같으면 국회의원직 내놓고 농사짓겠다”면서 “정치고 나발이고 인간적으로 사람이 된 다음에 정치를 해야지, 의원직 유지하고 당만 나가달라는데 그것도 못 하냐”며 먼저 사람이 되라는 뼈 있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약속 어긴 인 위원장이 먼저 사퇴해야”…“임금님이냐”


이처럼 인 위원장이 강공으로 나오자 서 의원도 지지 않고 인 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서 의원을 이날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인 위원장이 당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로 했던 입장을 하루 만에 번복했으므로 약속을 어긴 인 위원장이 먼저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서 의원이 지난달 25일 인 위원장을 만나 당의 최다선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적절한 시기에 탈당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인 위원장이 입장을 바꾸고 탈당을 요구했기 때문에 약속을 어긴 인 위원장이 먼저 사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 의원의 이러한 입장에 인 위원장은 앞서 언급한 기자간담회에서 “서 의원이 임금님이냐, 자기가 얘기하면 다 들어줘야 하느냐”며 “과거엔 그게 통했는지 몰라도 당이 이 지경에 된 건, 그런 태도로 당을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내 불고 있는 이탈 바람…‘악수(惡手)’


이와 같이 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친박 맏형이 정면충돌하면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이탈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정유섭 의원은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인 위원장의 인적청산과 관계없이 (당을)탈당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정 의원은 심재철 의원과 나경원 의원, 박순자 의원 등과 함께 탈당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탈당 뒤 개혁보수신당(가칭)에 합류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결국 인적청산이라는 칼을 빼든 인 위원장과 인 위원장의 인적청산이 독선이라며 맞서고 있는 서 의원의 충돌은 인적쇄신 과정에서 생기는 진통이 아닌 당내 이탈을 촉발시키는 ‘악수(惡手)’가 되고 있는 모양새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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